환자안전, 투자정도에 비례한다지만 주체는?

환자안전, 투자정도에 비례한다지만 주체는?

의료기관 vs 정부, 환자 ‘안전’ 두고 떠넘기기 ‘급급’

기사승인 2018-05-29 05:00:00

병을 고치러 가서 병에 걸린다면 어떨까.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억울함과 배신감에 몸서리친다. 그런데 이 같은 의료사고의 상당수를 예방할 수 있다면 어떨까. 전문가들은 병원 내에서 이뤄지는 감염(의료관련감염)을 비롯한 의료사고의 절반 이상은 방지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대한환자안전학회(회장 박병주)가 28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환자안전문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춘계학술대회에서 전문가들은 충분한 교육과 관심, 금전적·인적 자원의 투자가 이뤄진다면 환자안전을 지켜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밀양세종병원의 화재사고도, 이대목동병원이나 강남M피부과의 감염사고도, 기타 의료기관에서의 의료사고도, 관련 지침이나 기준에 충실한 시설을 갖추고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들이 이를 충분히 숙지하고 몸에 익혀 이행한다면 보다 안전한 진료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이들 또한 이 같은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시에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법은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투자로 구멍들을 메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세종병원 전진학 감염병센터장 겸 질 향상 환자안전 본부장은 “지금 우리나라의 환자안전 대책은 조각 조각나있다”며 “구멍들을 손가락으로 막고 있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평가한 후 예방 및 근절을 위한 전혀 새로운 혁신적 도구와 방법을 구현하고 적용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서울아산병원 감염관리실 박희연 팀장도 의료관련감염문제에 대한 토론에서 “국내 감염관리의 실상은 손가락으로 둑을 막고 있는 격”이라며 “메르스 사태 후 급히 관련 수가를 만들고 정부조직이 생기고 환자안전이나 인력관련 법이 제정됐지만 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전향적인 지원과 촘촘한 대책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이 외에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제희 부연구위원이 2016년 연구한 바에 따르면 584명의 의료진이 응답한 환자안전사고의 주요 원인은 ‘부족한 인력과 지나친 업무 과중’이었으며, 가장 효과적인 의료기관 환자안전 개선방안은 ‘정부 예산 지원’이었다. 환자안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주체는 ‘의료기관 경영자’였다.

일할 사람은 없는데 업무는 집중되다보니 환자안전을 신경 쓰기 어렵지만, 정부의 대대적인 예산지원과 의료기관 경영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환자안전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정부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의료진들의 의지와는 별개로 환자안전을 지켜나가기는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정부는 지난 4월 26일 ‘제1차 환자안전종합계획’을 발표하고, “환자가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고 알렸다. 예방가능한 환자안전사고 발생을 줄이고 의료기관의 환자안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환자안전 보고·학습시스템 구축 및 고도화 ▶국가단위 환자안전관리 인프라 구축 ▶환자안전 개선활동 지원 ▶환자중심 안전문화 조성을 약속했다.

여기에는 환자안전사고 실태를 파악하고, 의료기관에서 사고예방을 위한 교육을 지원하며, 실질적인 환자안전 사고관리 및 예방을 위한 비용이나 연구에 직접적인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다만, ‘지원’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환자안전을 위한 1차적 책임과 의무는 의료기관에 있음을 내포했다.


그 때문인지 일련의 정부지원과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이날 학술대회 참석자들의 중론이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서 부연구위원도 보다 많은 정부투자가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치며 ▶소규모 병원과 일차의료기관의 환자안전에 대한 구체적 대안 마련 ▶유관제도 및 시스템과의 연계 강화 ▶의료인력 수급 및 적정 근무시간 확보 ▶환자 참여증대 방안 구상 등을 추가로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진학 센터장 등도 중소병원 및 일차의료기관의 환자안전관리를 위한 지원에 방점을 찍으며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 중심의 현행 수가가산체계나 환자안전관리체계를 개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수가를 중소병원 이하로 내려야 진정한 환자안전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방법으로 “미국처럼 환자안전사고에 의한 추가의료비를 정부에서 지급하지 않는 감산(disadvantage) 방식을 직접 적용할 수는 없지만 감염관리 등 환자안전 활동을 할수록 의료기관이 혜택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해야한다”며 적정수가 보상의 한 방향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자리에 참석한 의료인들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감염관리료 등 환자안전 관련 수가가 원금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용이라고 비난하며 환자안전은 투자에 비례하는 만큼 지원이 아닌 원가 이상의 투자가 이뤄져야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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