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선거를 말하다] 표 없으면 정책도 없다

[청년, 선거를 말하다] 표 없으면 정책도 없다

[6·13 지방선거] 표 없으면 정책도 없다

기사승인 2018-06-06 05:00:00

[편집자주] 청년은 변화의 주역이었다. 1960년 4·19 혁명부터 87년 6월 항쟁까지. 이들은 헌법을 바꾸고,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역사의 한 가운데 늘 이들이 있었다. 현재, 청년은 여전히 변화를 이끌고 있을까. 

20·30대 투표율은 항상 낮았다. 누군가는 청년의 정치 무관심을 탓했다. 취업 준비, 스펙 쌓기 등에 몰두해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었다. 청년이 정치와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비판론도 등장했다. 낮은 투표율은 정말 청년만의 탓일까.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총 4편에 걸쳐 투표로 보는 청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짚어본다. 

#“후보님들이 매선거마다 노년층을 위한 정치, 소상공인을 위한 정치, 농가를 위한 정치를 외치고 실현하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밖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우리 2030 청년들을 꼭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저출산, 노령화가 심각해지는 이 시기에 우리 전북 고창의 30, 40년 후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후보님들께 묻습니다. 아직 밝히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위한 개선책이 있나요. 아니라면 선거를 10일 남짓 앞둔 지금까지도 우리를 잊으신건가요”

지난 4일 전북 고창군 지역주민 익명 커뮤니티 ‘고창 익명’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한 청년의 호소문이다. 이 글을 작성한 네티즌은 자신을 “6.13 지방선거(이하 지방선거)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한 청년 유권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후보들이 아침마다 부르짖는 ‘고창의 미래’에 20대, 30대 청년은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비단 이 청년만의 생각일까. 또 고창에서만 일어나는 현상도 아니다. 저조한 투표율, 줄어드는 인구수. 청년층의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 

▲ 청년 정책은 내용 부실하고, 예산은 부족하고

청년층의 낮은 투표 참여율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지방선거에서 각 정당이 내놓은 공약에서 청년 관련 정책은 내용이 부실하거나 뒷순위로 밀렸다. 더불어민주당의 지방선거 10대 공약 중 1순위는 ‘청년행복’이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공약을 자세히 뜯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청년 추가 고용 장려금 지원, 청년구직활동지원금 확대 등 이미 정부가 시행 중이거나 추진 중인 정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우선순위를 자영업자, 소상공인, 노년층에 뒀다. 자유한국당 10대 핵심 공약 중 ‘청년생활 활력’은 9순위였다. 바른미래당 10대 핵심 공약에는 청년 관련 정책이 포함되지 않았다. 

청년 정책이 일자리 문제 해결에만 편중된 것도 아쉬운 점이다. 시민단체 청년공동행동이 청년기본계획이 수립된 지방자치단체 대상으로 비교한 결과, 일자리 관련 예산만 전체의 49~98%였다. 청년 복지, 주거, 건강 등 다른 분야에 대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보다 못한 청년들이 직접 나섰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청년유니온 등 26개 전국 청년단체들은 지난 4월24일 ‘2018 지방선거 청년공동행동’ 발족식을 열고 10가지 청년정책 요구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청년수당 지원체계 확립 진로탐색을 위한 청년갭이어 전국 확대 청년채무 조정기구 설립 청년주거지원 및 주거공동체 활성화 등이 담겼다. 

송효원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은 “청년 1/3이 주거 빈곤으로 분류된다. 우울 증세를 보이는 청년층 비율은 14.9%에 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일자리 정책은 청년을 노동시장에 빨리 진입시켜 일시적으로 실업률을 낮추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형적인 ‘보여주기식’”라고 말했다. 

예산 역시 문제다. 청년들에게 투입되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청년층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일자리 해결에는 2018년 정부 예산 429조원 가운데 3조1000억원이 배정됐다. 비율로 따지면 약 0.72%다. 지자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경기도는 2018년도 예산안으로 22조997억원을 편성했다. 이 중 노인복지(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 시설급여 지원 등)에 1조9233억원이 편성됐다. 1845억원이 편성된 청년 일자리 예산(‘일하는 청년 시리즈’, ’일하는 청년통장’, 청년구직지원금)의 10배가 넘는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 갈수록 노년층에 예산이 집중되는 현상은 심각해진다. 경북 의성군 전체 복지예산(990억원) 가운데 노인 복지예산은 613억원(63%)였다. 아동(92억원), 장애인(68억원), 여성(16억원), 청소년(6억원) 예산보다 훨씬 많다. 이에 일각에서는 세대 형평성을 위해 세대인지예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머릿수도 투표율도 밀린다...청년층 ‘이중고’

청년층이 정치에서 홀대받는 원인은 무엇일까. 노년층 유권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되는 동안 청년층의 영향력은 약화된 까닭이다. 청년층은 매력적이지 않은 유권자층으로 전락했다. 

노인 중심 정치는 ‘실버 민주주의’, 또는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라고 불린다. 청년층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정치 형태다. 경제적으로는 노년층이 청년층에 연금 등 복지 부담을 떠넘긴다. 이는 세대 간 경제적 격차로 이어진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이미 젊은층의 근로소득이 은퇴 고령층의 연금소득보다 적은 현상을 겪고 있다. 또 정치적으로는 노인이 과대 대표되고 청년이 과소 대표될 수 있다. 정치인이 인구수가 많고 투표율이 높은 노년층 위주의 정책을 내놓기 때문이다.

한국도 노년층 발언권이 강화되고 있다. 먼저 60세 이상 유권자 숫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9대 대선에서는 60세 이상 유권자가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의 24.4%다. 18대 대선 당시 60세 이상 유권자는 842만8748명으로 전체의 20.8%였다. 4년 사이 비중이 3.6%p 증가했다. 반면 20~40대 비중은 감소했다. 20대 유권자의 경우 16.3%에서 15.9%로 줄었다. 30대 유권자는 20.1%에서 17.6%로, 40대 유권자는 21.8%에서 20.6%로 하락했다.

이뿐만 아니다. 노년층 투표율은 청년층을 크게 앞선다. 60대 이상 유권자의 투표율은 20~30대 유권자 투표율과 앞자리 숫자부터 다르다. 역대 지방선거 연령대별 투표율을 분석한 결과, 60대 이상은 꾸준히 70%대를 유지해왔다. 20대 투표율은 2회 33.9%, 3회 31.2%, 4회 33.8%로 30%대를 유지하다 5회 이후에서야 40%대로 올랐다. 30대 투표율은 68.1%를 기록한 1회 지방선거를 제외하고는 줄곧 40%대에 머물렀다.

▲ 일자리 찾아 고국 떠나는 이탈리아 청년, 노년층 눈치 보는 일본 정치인

‘노년 중심 정치’가 장기화되면 어떻게 될까. 이탈리아의 경우, 정치권은 지난 20년간 노년층에 유리한 정책을 우선 추진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단행한 노동개혁은 청년실업 해결 보다는 연금수령자이자 정규직인 중장년층 일자리보전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 결과, 이탈리아의 지난 2016년 청년실업률은 38.4%을 기록했다. 청년들은 고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할뿐더러, 취업하더라도 임금 수준이 낮은 탓이다. 같은 해에만 이탈리아인 12만4076명이 국외로 떠났다. 이중 청년층은 39.2%다. 세대 간 경제적 불평등도 심각하다. 30세 미만 청년들의 소득은 60세 이상 노년층이 버는 금액 60%에 불과했다. 

일본은 재정적자 누적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 2016년 기준 일본 정부의 누적 부채 규모는 명목 GDP의 200%가 넘는다. 인구고령화와 함께 사회보장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해법은 명확하다. 현재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가 내는 보험료를 올리고 노인 세대가 받는 복지 혜택을 대폭 삭감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여기에 앞장서는 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노년층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일본 청년은 자연스레 정치에서 소외됐다. 일본 정부의 지난 2015년 사회지출을 정책 부문별로 분석한 결과, 고령 부문이 55조4000억엔(46.4%), 보건 부문이 41조1000억엔(34.5%) 이었다. 고령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 부문이 전체 지출 80% 이상을 차지한 것이다. 반면 가족 부문 사회지출은 7조엔으로 전체의 5.8%에 불과했다. 

▲ “한국, 일본보다 상황 더 암담”…해결책은

문제는 우리나라 청년실업이 일본보다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LG 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청년 실업 문제, 일본 장기침체기와 닮은 꼴’ 보고서를 통해 인구감소 영향으로 일본의 프리터족(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과 니트족(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젊은층) 절대수는 줄었지만 비율은 줄지 않았다고 짚었다. 인구구조 변화가 실업률은 낮출 수 있지만 일자리 질적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또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20년의 격차를 두고 일본과 유사한 성장 흐름을 보여 왔다”며 “높은 대학 진학률과 앞으로의 세계 경제 환경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불리한 측면이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7년 뒤인 오는 2025년에는 전체 인구 20% 이상이 65세인 초고령화 사회가 된다. 실버 민주주의 아래서 청년층은 질 낮은 일자리에 고통 받고, 정치 주변부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방지할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 청년층의 투표다.

김미진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사무총장은 “정치인을 움직이는 것은 표”라며 “청년 문제는 당사자들이 잘 안다. 정치를 바꾸려면 청년층 목소리를 더 표출하는 방법밖에 없다. 가장 좋은 절세 방법은 투표권 행사”라고 강조했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그래픽=신민경 기자 smk503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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