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6·1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임박했지만, 교육감 선거는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있다는 우려가 있다. 국회의원 재보궐 및 광역단체장 선거에 묻힌 데다 북미회담 등 대형 이슈들이 더해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간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진영논리에 얽힌 대결 구도만 부각되며 유권자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는 지적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실제 이념에 따른 공방이 앞서면서 정작 중요한 구체적 정책 제시 등은 뒷전으로 밀리기도 했다.
이에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총 3편에 걸쳐 교육감 선거의 중요성과 선거 풍토 개선의 필요성을 짚어보고, 진보와 보수의 입장에 서서 교육 주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을 최근 교육계 주요 현안을 중심으로 정리·비교한다.
#늦은 시간, 서울 강남구 학원가 앞에 길게 늘어선 학부모 자동차 행렬. 대입수능시험을 앞두고 전국의 사찰을 돌며 108배를 하는 부모들. 학군에 따라 달라지는 아파트 가격.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자녀 교육과 관련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지만, 유독 무관심한 한 가지가 있다. 4년마다 돌아오는 교육감 선거다.
▲ 교육감 선거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지지 후보 없다” “모르겠다” 절반 넘어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교육감 선거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 다수는 선거를 약 일주일 앞두고도 후보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공동으로 각 시·도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6·13 교육감 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투표할 후보가 없다”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이 전국에서 전북을 제외하고는 41.5~64.5%에 달했다. 서울의 경우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는 답변은 32.9%였다. 1위 후보인 조희연 현 교육감 지지율 32.3%보다 높은 수치다. “모르겠다”는 대답은 19.2%로 집계됐다. 부산광역시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김석준 현 교육감의 지지율보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는 응답이 높았다. 김 교육감 27.8%, 지지하는 후보 없다 30%, 잘 모르겠다 27.3%로 나타났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시민들은 교육감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박모(67)씨는 “아직 교육감을 누구로 찍을지 고민해보지 않았다”고 말을 줄였다. 강모(24·여)씨는 “서울시장 후보자는 누구인지 알지만, 교육감 후보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교육감이 바뀐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무관심에 지쳐 사퇴한 후보도 있다. 박융수 인천교육감 예비후보는 지난달 13일 후보직을 내려놨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직 8년을 남긴 상황에서 교육감 선거 출마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면서 “교육감 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의지가 약해졌다. 더 이상 무관심 속에 선거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 사퇴를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 시험·수업 방식까지 좌지우지…‘교육 소통령’
교육감은 지역 교육계 전반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녔다. 유치원, 초·중·고등 교육을 총괄해 ‘교육 소(小)통령’으로도 불린다. 17개 시·도 교육감이 다루는 예산은 연간 60조원이 넘는다. 또 공립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원 37만명을 승진·전보 할 수 있는 인사권을 손에 쥐고 있다. 직접 인사할 수 있는 인원으로만 치면 대통령(7000명)보다 훨씬 많은 셈이다.
교육감이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강력하다. 교육감은 시험 방식을 객관식형 지필고사에서 서술·논술형 시험과 수행평가로 대체하거나 수업 방식을 토론 위주로 바꿀 수 있다. 또 앞으로는 교육감이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할 권한을 갖게 될 예정이다. 교육부가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 권한을 교육부의 동의 없이 교육청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교육감 성향에 따라 학생들의 학교생활도 좌지우지된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추진해온 학생인권조례는 △교내 체벌 금지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참여 자율화 △두발·복장 전면 자유화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서울과 경기도, 광주, 전북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시행 중이다.
인천 계양구 소재 한 중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 김모(58·여)씨는 “교육감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학교 운영이 실제로 많이 달라진다”면서 “학력 증진을 강조한 교육감이 당선됐을 때에는 학교에 학력관리부가 만들어져서 학생들에게 방과 후 수업을 의무적으로 시켰었다. 그런데 후임 교육감이 인성을 강조하자 방과 후 수업이 다 폐지되고 학생들의 자율권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 특정 정당 지지 표방 안 되는데 푸른색 입고 선거운동…‘민주당인가?’
문제는 교육감 선거에서 정책·철학 대결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빈자리는 ‘색깔론’으로 채워졌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6조는 교육감 후보자는 특정 정당을 지지·반대하거나 특정 정당으로부터 지지·추천받고 있음을 표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있으나 마나’ 법으로 전락한 것이다. 전북교육감 후보 5명 중 4명은 모두 ‘진보’를 표방하며 유세현장에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색 계열의 색을 사용해 논란이 됐다. 민주당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현상에 편승한 것이다. 교육감 선거공보물에 문재인 대통령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이름을 넣은 후보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TV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상호 비방만 주고받는 모습은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TV 토론회는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정책 및 자질을 한자리에서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 창구다. 지난 4일 MBC 주최로 처음으로 서울시 교육감 선거 후보 간 TV 토론회가 열렸다. 후보들은 “참 나쁜 교육감 후보” “수준 낮은 정치인을 상대하기 힘들다” 등 거친 언사를 주고받았다. 지난 3일 인천언론인클럽 주관으로 열린 인천시교육감 후보자 토론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승의 후보는 핵심 공약을 밝히는 모두 발언에서 “편향된 전교조 출신이나 전과자 출신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면서 다른 후보들을 깎아내렸다.
전문가들은 현행 교육감 선거가 시민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인숙 세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대선 등에 비해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은 크게 떨어진다”면서 “교육정책이 대입에 맞춰져 있다. 피부로 와 닿는 정책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제영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유권자들이 교육감 선거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가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여는 공개 토론회를 지금보다 더 자주 개최하면 좋을 것 같다. 언론은 TV 토론회 횟수를 늘려서 유권자들에게 교육감 선거 홍보 자리를 자주 제공해야 한다”고 전했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 spotlight@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