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약물 이용지원 사업’ 일명 ‘방문약사 사업’을 두고 의료계와 건강보험공단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은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와 ‘올바른 약물 이용지원 사업’을 위한 공동혁력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노인인구, 만성질환자의 증가에 따른 투약 순응도 향상과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은 빅데이터(진료내역)를 기반으로 일부 지역(서울 도봉·강북·중구·중랑, 인천 부평·남구, 경기 안산·고양일산)을 선정해 고혈압·당뇨병·심장질환·만성신부전 질환자 중 약품의 금기, 과다 중복투약 대상자를 선정해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약사회 소속 약사와 공단직원이 함께 대상자 가정 방문을 통해 지속적(4회) 투약관리로 약물의 올바른 사용관리, 유사약물 중복검증, 약물 부작용 모니터링 등 올바른 약물이용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며, 시범사업 결과 평가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강청희 급여상임이사는 “투약관리 사업을 통해 중복처방, 약품의 금기, 과다투약 등 약물오남용 대상자에게 올바른 약물의료이용 지원 서비스 제공으로 질병악화 예방과 약물에 대한 이차 약해(藥害) 사고 예방으로 국민의 건강수준이 향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의약분업 실패를 자인하는 방문약사제도를 전면 철회하고, 오히려 선택분업을 도입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의협은 약사가 임의로 환자의 의약품 투약에 개입하고 의사 본연의 일인 처방에 간섭해 불법의료행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다분해 의사의 처방권, 국민 건강권에 심각한 침해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의사 처방권과 국민 건강권을 심각히 침해할 우려가 있고, 의약분업 폐단의 땜질식 처방에 불과한 방문약사 시범사업 전면 철폐 ▲의약분업 전면 재검토를 위해 보건복지부-의협-약사호가 참여하는 ‘의약분업 재평가위원회’ 구성·운영 ▲정부의 건강보험공단 관리감독에 만전 등을 요구했다.
특히 방문약사 사업이 현 의약분업제도에 정면 역행하며 실패를 공개적으로 자인하는 것이라며, 선택분업을 시행해 환자의 편의성 제고 및 건강보험재정을 절감할 수 있는 선택분업을 시행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의료계가 주장하는 선택분업은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후 약 조제를 의사에게 원할 경우 의료기관에서 직접 조제하게 하고, 약국조제를 원할 경우에는 원외처방전을 발행해 약사에게 조제 받는 방식이다.
의협의 반발에 건보공단은 즉각 해명자료를 통해 국민의 질병 조기발견·예방 및 건강관리는 건보공단의 주 업무이며, 방문약사 사업은 약물의 올바른 사용관리 및 적정투약 모니터링 등으로 약사가 의사의 진단·처방을 변경하는 등 의약분업을 침해하는 업무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 건보공단의 사업이 적정투약관리업무의 일환으로 투약순응도 향상을 위해 약물의 올바른 사용관리, 유사약물 중복검증, 약물 부작용 모니터링 등 잘못된 약 사용을 교정해 주는 것이라며, 시범사업 실시 지역 내 의사회와 협의체를 구성해 지역 내 환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관련 학회 등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의협은 의료현장의 진료의사들은 처방 시 환자들에게 약물의 올바른 사용관리에 대한 설명과 안내를 별도의 복약지도료 없이 수행하고,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는 등 약물 오남용 방지를 위해 만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약국조제료가 3조8480원에 달하는데 약사상담료를 또 다시 지급하면서 이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건강보험료를 특정 단체를 위해 불필요하게 쓰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방문약사 사업이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에 해당된다고도 주장했는데 빅데이터(진료내역)를 기반으로 일부지역 만성질환자 중 약품의 금기, 과다, 중복투약 이력이 있는 환자들을 시행되고, 해당 정보가 의료인 및 의료기관으로부터 수집된 게 아닌 청구과정에서 건보공단이 취득한 것으로 환자의 동의 없이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하는 것, 또 이 같은 정보를 약사회에 제공해 비의료인인 약사와 함께 가정을 방문해 복약지도를 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 제102조(정보의 유지 등)를 위배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은 서업 대상자의 개인정보를 약사회에 제공하지 않으며, 또 의협에서 주장하는 민간보험사에 개인정보 제공 등 유사한 사례와는 전혀 다르다고 재반박했다.
이 사업을 위해 시범사업 실시 지사에 근무하는 직원은 대상자 관리 및 방문일정 확인 등 업무를 추진하고, 약사회의 약사에게는 개인정보(성명, 주민번호 등)를 제공하지 않아 개인정보유출 등 침해 소지가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단 직원의 약사와 가정방문 시 개인정보 수집·이용 및 3자 제공 동의서를 징구할 예정에 있다고 덧붙였다.
환자 동의 여부에 대해서도 건강보험법 제14조(업무) 제4항, 시행령 제9조의2(공단의 업무) 제4항에 규정된 공단의 고유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며, 적정투약관리업무의 일환으로 건강보험법 제 102조(정보의 유지 등)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건보공단은 고혈압·당뇨 등 주요 만성질환에 대한 정보 제공 및 건강관리 지원 사업에 해당되며, 시행령 제81조(민감정보 및 고유식별정보의 처리)에 따라 공단은 자료를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의협에서 우려하는 점을 알고 이를 반영한 사업계획 수립으로 의료법·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되지 않는 원칙을 지킬 것이라며, 공연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타 직능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일방적 주장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재 의협과 건보공단의 공방은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내년도 수가협상에서 타결을 보지 못한 의협의 수가가 이달 말 예정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낮게 결정될 경우 다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의협은 해당 사안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과 엮어 반대에 나설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약사회가 기대 이상의 수가로 현상을 타결한 만큼 의료계의 불만이 팽배해 있는데 해당 사업으로 약사에게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 투입될 경우 반발은 더 확산될 수밖에 없어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