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25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논두렁 시계’ 보도 배후는 국정원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이 전 중수부장은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 기자단에 입장문을 보내 고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를 약 2주 앞둔 지난 2009년 4월14일 국정원 직원 2명이 대검 중수부장에 찾아와 ‘원 전 원장의 뜻’이라고 전제하며 “부정부패 척결이 좌파 결집으로 이어져선 안된다. (고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 전 중수부장은 지난 2009년 4월22일 KBS가 “고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피아제 시계를 받았다”고 보도한 것의 배경에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했다고도 말했다. 2주 뒤인 지난 2009년 5월13일 “고 노 전 대통령 측이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내용의 SBS 보도를 두고도 이 전 중수부장은 “국정원의 그간 행태와 원 전 원장과 SBS의 개인적 인연 등을 고려해 볼 때 국정원이 배후에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고 적었다.
다만 그는 고 노 전 대통령의 고액 시계 수수 혐의 자체는 고 노 전 대통령 스스로가 인정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검찰 수사에서 ‘2006년 9월경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이해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한 세트를 2억 원에 구입해 고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통해 고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으며, 그 후 지난 2007년 봄경 청와대 관저에서 고 노 전 대통령 부부와 함께 만찬을 할 때 직접 감사 인사를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이에 대해 고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그와 같은 시계 세트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자신은 KBS에서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된 후에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이런 조사 내용은 모두 녹화됐고 조서로 작성됐다”며 “고 노 전 대통령은 작성된 조서를 열람한 후 서명 날인했으며, 그 조서는 영구보존문서로 검찰에 남아 있다”고 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또 “고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검찰은 언론의 치열한 보도 경쟁 속에서 수사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며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이 보도된 것은 유감스럽지만 검찰이 의도한 바가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한편 SBS측은 같은날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통해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한 데 대해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