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불거진 검찰과 경찰의 신경전이 지난 2016년 경기 평택에서 일어난 ‘원영이 사건’으로 옮겨 붙었다.
지난 22일 청주지검 강수산나(50·사법연수원 30기) 부장검사는 ‘원영이 사건’을 언급하며 경찰 수사의 미흡한 부분을 검찰 수사지휘가 바로잡았다고 주장했다. ‘원영이 사건’은 친부와 계모가 7세 자녀를 학대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암매장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친부에게 징역 17년형, 계모에게 27년형을 각각 선고했다.
당시 수원지검 평택지청 소속으로 사건을 지휘한 강 부장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수사지휘 사례를 통해 본 검사 지휘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강 부장검사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검경 합동 수사회의를 열어 경찰에 피의자 진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피의자들의 신용카드, 교통카드, 폐쇄회로(CC)TV 분석 등 수사 범위를 확대하도록 지시했다”면서 “검사가 사체 발굴 현장, 부검 현장, 현장검증 등을 직접 지휘했고, 아동보호기관을 상대로 한 조사와 국내외 판례 분석 등을 동시에 진행해 살인죄로 법리 구성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초동수사 단계부터 경찰에 대한 유기적 수사지휘로 피의자 신병을 조기 확보하고 피해자 사체를 신속히 발굴해 암장될 뻔한 사안을 규명했다”며 “치밀한 법리검토로 학대 행위자인 계모와 방관자인 친부를 아동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 공범으로 기소해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며 검찰의 수사 지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경찰은 즉각 반발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박덕순 전 경기 평택경찰서 형사과장(현 수원 서부서 형사과장)은 25일 경찰 내부망에 ‘강검사님 그런 수사 지휘는 필요치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반박글을 올렸다.
박 과장은 "책상에 앉아 서류만 보는 검사는 경찰이 피의자 진솔에만 의존해 수색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다"며 "내면적으로는 수사 방향을 다면화해 물 샐 틈 없이 수사했고 한쪽으로만 수사하지 않는 것은 수사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사 과정에서 강수산나 당시 평택지청 부장검사가 2회에 걸쳐 강력3팀장을 불러 갔더니 '사체를 찾는 게 중요하다'며 금융정보를 확인하고 디지털 포렌식을 하라고 지시했다"며 "이미 다 하고 있는 것이며 금융정보 확인과 통신수사는 기본인데 겨우 그걸 지시하려고 바쁜 수사팀을 검찰청으로 오게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박 과장은 원영이 계모와 친부로부터 시신 유기 자백을 받아낸 경위도 설명했다. 원영이 계모와 친부의 금융거래내역을 살핀 경찰은 부부가 이상한 장소에서 초콜릿을 구입한 흔적을 확인한 끝에 해당 가게 근처에 원영이 친할아버지의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묘 주변을 수색하던 중 삽자루를 발견해 이들 부부에게 원영이의 시신을 유기했다는 자백을 받아낸 것이다. 박 과장은 “사체 발굴날 검사가 직접 나와보겠다더니 현장에 온 젊은 검사는 ‘현장을 많이 나와 보지 않아서인지’ 이상한 행동을 해서 ‘그러시면 안된다’라고 충고했다. 이상한 행동이 뭔지 얘기하면 감정 싸움이 될 것 같아 밝히지 않겠다”고 검사들의 현장 경험 부족을 질타했다.
박 과장은 죄명을 의율(법을 사건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검사의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검찰 송치 하루 전 평택지청에서 열린 수사회의에서 강 부장검사는 박 과장에서 “피의자의 죄명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고 물었다. 박 과장의 글에 따르면 강 부장검사가 “살인죄로 하지 말고 아동학대치사죄로 의율하라. 경찰에서 살인죄로 의율했는데 검찰에서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요구했다. 이에 박 과장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경찰관들을 수사팀에 합류시켜 법률을 검토 중이니 경찰의견은 내일 송치의견서로 보내겠다”고 답했다.
박 과장은 “이후 경찰에서 살인죄로 의율 송치했고 검찰에서도 살인죄로 기소, 유죄의 판결을 받게 된 것”이라며 “만약 강 부장검사의 구두 지휘대로 아동학대치사죄로 의율 송치하고 검찰에서 살인죄로 기소했다면 그 검사는 경찰관이 법률 적용을 못했다고 또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았을까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박 과장은 “강 검사 글을 보니 전교 1등하는 학생을 교장선생님이 불러 ‘수학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고 다음날 또 불러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라’고 하고는 마치 자신이 열심히 지도해 그 학생이 전교 1등을 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박 과장은 “원영이를 상기하며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잇을까 봐, 개인적으로는 피해자 시신을 직접 만졌을 당시 느낌이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아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면서 “하지만 언론만 접한 전국의 많은 경찰 동료들이 오해를 할 것 같아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또 “수많은 경찰관들이 발로 뛰어 해결한 사건인데 사무실에 앉아 있던 현직 검사가 사실을 호도하며 ‘경찰관이 수사의 기분인 금융계좌 추적을 하지 않아 자신이 이를 지휘하며 사건을 해결했고 앞으로도 계속 수사지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같은 수사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자괴감까지 든다”고 토로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