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액션 영화다. 높은 완성도의 액션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없다. 감독이 의도한 철학적 메시지도 장르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마녀’(감독 박훈정)는 피투성이로 시설에서 탈출한 한 소녀가 어느 노부부의 집 앞에서 쓰러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소녀와 노부부는 가족이 되어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고 10년이 지나 소녀는 자윤(김다미)이라는 이름의 고등학생으로 평범하게 학교를 다닌다. 소값이 폭락하며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자윤은 돈을 구하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방송에 나온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상한 남자들이 하나 둘 접근하기 시작한다.
‘마녀’는 전형적인 슈퍼히어로 영화의 구조를 따라간다. 평범한 생활을 하던 고등학생이 어느 날 자신의 숨겨진 능력과 탄생의 비밀을 마주하는 설정이나 자애로운 부모님의 가르침과 본능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제는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보여준 것과 똑같다. 차이점은 주인공이 여성이고, 배경이 한국이라는 것 정도다. 사실 여성 주인공이 아니어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어도 문제될 것 같진 않다.
‘마녀’를 보다보면 ‘스파이더맨’ 외에 다른 영화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기본적인 설정은 영화 ‘루시’와 비슷하고, 마지막 30분에 폭력적인 장면을 몰아치는 구성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익숙한 만큼 영화적인 재미는 확실하다. 하지만 새롭지 않다는 단점은 극복하기 어렵다.
박훈정 감독 특유의 안정적인 연출은 시선을 잡아끈다. 자윤이 학교를 다니고 오디션에 참가하는 평범한 일상 이야기가 1시간30분 동안 흐르지만 지루하지 않다. 중간중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이 등장해 긴장감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 정체에 궁금증을 품게 되는 동시에 자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는 박훈정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영화의 반전과 인물의 매력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선악보다는 선택하지 않은 생존과 앞으로의 삶에 더 눈길이 간다.
어두운 색 옷을 입은 남성들이 어린 여성을 위협하는 장면은 이번에도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등장한다.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한 신인 배우 김다미의 놀라운 연기가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27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