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영지원실 A과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료들은 무단결근을 한 A과장을 찾았고, 고향집에서 자살한 사실을 알게됐다. A씨는 왜 갑자기 목숨을 끊은 것일까.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내부를 넘어 청와대에까지 닿았다.
지난 6월26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왔다. 제목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인권유린을 조사해주세요”였다. 글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김용익, 이하건보공단) 내부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상황이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담겼다.
작성자와 공단 직원들에 따르면 건보공단 부하직원에 대한 상사의 모욕적 언행은 심각한 수준이다. 성희롱과 개인 심부름, 인격적 모독과 욕설, 비방, 비리, 횡령 등이 빈번하고 사내게시판에도 일련의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인 문제제기에도 해당 상사에 대한 징계는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조용히 사안을 무마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조직의 치부를 개선하기보다는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모습만 보인다.
공단 직원으로 보이는 한 네티즌은 “상사의 갑질폭언에도 조직관리차원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포장해 결론짓기 일쑤”라며 “소위 고위직이라는 임원 이사 1, 2급들은 오랜기간 음성적 탄탄한 거미줄식 네트워크로 얽혀있어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의 어떤 억울함도 권력 앞에 무력해지고 만다”면서 “성희롱, 성폭력 범죄자의 처벌은커녕 오히려 조직이 가해자를 옹호, 보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직원들은 하소연할 창구도 자신의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이것이 현주소”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직원은 “인권경영기관으로 선정됐다고 하지만 겉으로 어떤 기준으로 선정됐는지 모르겠다. 공단 내에는 여전히 갑질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간부들이 너무나 많다. 인식 자체를 뿌리 뽑지 못할 거면 애초에 인권경영 타이틀도 몰수 해야한다”고도 심정을 전했다.
일련의 청원에 힘입어서인지 건보공단 내부는 A과장의 자살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시끄럽다. 일각에서는 A과장을 괴롭혔던 상사에 대한 내부감사가 이뤄져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더 높은 단계에서 사건을 파헤치고, 건보공단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성희롱과 성추행, 상사의 모욕적인 언어폭력과 난무하는 비방과 비난, 업무태만과 횡령 등을 근절하고, 우울증과 정신적 피해 심지어 자살충동을 느끼는 이들을 보듬을 수 있도록 조직을 바로 세워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은 아직 어떤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A과장의 사건과 관련해 인권 유린적 행위가 있었는지 내부감사를 통해 파악할지 다른 방법을 취할지 의견이 나뉘고 있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논의를 거쳐 해결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건보공단을 관리·감독하는 보건복지부 관계자 또한 “청와대에 민원이 제기돼 사건을 파악하게 됐다”며 “아직 청원에 올라온 내용 외에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추가보고는 없었다. 건보공단 내부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일단 지켜볼 것”이라고만 전했다.
아직 A과장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죽음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서도 말들만 무성하다. 일각에서는 평소 상사인 B부장의 언행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지만 밝혀진 것은 아직 없다.
다만, A과장의 죽음을 계기로 땅에 떨어진 것 같은 건보공단 내 인권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 개선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누구보다 빨리 인권경영을 하겠다며 국민인권위원회와 업무협약을 맺을 것이 아니라 내부를 살피고 곪은 부위를 도려내야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한 공단 관계자는 “공단의 직원만 1만3000여명에 달하는 만큼 많은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이 일하다보니 여러 일들과 말들이 나오는 점도 분명 있다. 비율로 따지면 일련의 문제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도 할 수 있다”고 두둔했다.
다만 내부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강압적으로 노래방을 가는 등 2차 회식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지 않냐”면서 “형식적인 인성 및 인권 교육 등을 하기에 앞서 심각한 사내 정치문제와 문화,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