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전북 익산에서 진료중인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환자의 폭행에 코뼈가 골절되고 뇌진탕 증세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2일에는 경북 울진에서 응급실 난동이, 6일에는 강원도 강릉에서 의사에게 망치를 휘두르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7일에는 경북 경산시에서는 진료 중인 환자와 의사를 폭행하고 진료실 입구에 불을 지르는 사건도 있었다.
1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의료기관에서 4건의 폭행사건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 같은 폭력사태가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의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1640명 중 97%가 폭언을 경험했고, 63%가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1달에 1번은 평균적으로 맞았고, 1주에 3~4번은 욕설을 들었다. 부상을 당한 의사들도 56%에 달했다. 심지어 이 같은 폭언과 폭행의 경험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학회는 전했다. 이에 의사들이 적극적인 대처에 나섰다.
당장 익산 사건이 발생한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응급실 등 의료인에 대한 폭행을 엄중히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오는 8월 2일 종료될 예정인 이 청원의 24일 현재 참여자는 10만9000명이다. 대한의사협회 등 보건의료계 단체들은 청와대의 답변을 듣겠다며 20만명을 목표로 청원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방법도 다양하다. 대한의사협회는 20일 “응급실 폭력 근절 청원에 동참하고 링크를 의사 5명에게 전달하면 모든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며 행운의 편지를 연상시키는 문구를 활용해 카카오톡 메시지, 사회연결망서비스(SNS) 등 여러 채널을 통해 국민청원 동참을 촉구했다.
대전시의사회는 의사협회와는 별개로 오는 26일 오후 6시부터 대전 중구 대전시의사회관 앞에서 ‘의료인 폭행 추방 국민청원 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의료인과 구급대원 등 국민생명에 관련된 직업군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자는 취지다.
전라남도의사회는 같은 날 오후 5시부터 목포와 순천, 여수 3곳에서 동시에 ‘가두 캠페인’을 연다. 잇따르는 진료현장에서의 폭력사태에 대한 실태와 폭력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른 환자를 향한 2차, 3차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 의사협회 관계자는 “진료공간에서의 폭력행위를 강력히 처벌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국민청원을 계기로 환자와 의료인 모두가 안전한 진료현장을 만들기 위한 활동”이라며 재발방지와 함께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려는 의도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청원종료일을 10일 앞둔 지금까지 10만여명이 청원에 동참한 것과 관련해 의사협회 관계자는 허탈함을 담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에 분포한 의사만 13만명에 달하는데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보건의료인을 모두 합하며 100만명을 넘어서지만 뜻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있다는 한탄이다.
그는 “타 직역을 제외하더라도 의사와 그 가족 1명만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하면 2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며 “옆자리의 동료나 선·후배, 때론 자신이 폭행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조차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이게 지금 의료계의 현실인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