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약사회가 24시간 편의점 판매 일반의약품 확대 막으려면

[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약사회가 24시간 편의점 판매 일반의약품 확대 막으려면

기사승인 2018-08-13 00:01:00

글·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부작용이 없는 약은 없다. 그래서 약은 가급적 안 먹거나 적게 먹는 것이 좋다. 2001년 의약분업을 시행한 목적 중 하나는 국민들에게 병의원에 가서 의사 처방을 받은 후 다시 약국에 가서 약사 조제를 받도록 하는 두 번의 불편을 겪게 만들어 가급적 약을 적게 먹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012년 11월 15일부터 시행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약을 많이 복용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해열진통제 5품목, 감기약 2품목, 소화제 4품목, 파스 2품목 등 총 4개 적응증 13개 품목을 24시간 연중무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도록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약사회는 안전상비의약품의 대표주자격인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의 심각한 부작용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술을 마신 후 타이레놀을 복용하게 되면 치명적인 간독성을 일으킬 수 있고, 외국에서는 자살 수단으로 타이레놀이 자주 악용되고 있다며 안전상비의약품에서 타이레놀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는 그렇게 위험한 약이면 일반의약품이 아니라 의사의 처방에 의해 조제해야 하는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야지 편의점에서 판매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반박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현재 제산제(위장약), 지사제(설사멈추는약), 화상연고, 항히스티민제 등을 안전상비의약품에 포함시켜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열린 제5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회의에서는 약사회 추천 위원의 자해 소동으로 회의가 무산되었고, 9개월 만에 개최된 지난 8월 8일 제6차 회의에서도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하고 파행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뇌리에는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약의 처방과 조제에 관한 원칙을 설명하는 슬로건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그런데도 유독 일부 일반의약품에 대해서는 약국 약사가 아닌 약에 있어서 비전문가인 편의점 점원이 판매하는 것에 대해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의약분업 이후 지난 17년간 약사 스스로가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자성어로 표현하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편의점 점원에 의해 판매되고 있는 4개 적응증 13개 품목의 안전상비의약품은 약국에서도 판매하고 있지만 약사도 대부분 복약지도를 하지 않고 있다. 어떤 약국에서는 약사가 아닌 일반 직원(일명, 카운터)이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약국 현장의 모습을 오랫동안 보아온 국민들이 야간·심야·공휴일에 아팠을 때 약을 구하지 못해 결국 응급실에 가서 비싼 검사비를 지불해본 경험이 한번만 있어도 24시간 편의점에서 일반의약품을 판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의약품을 약국에서 판매할 때도 약사의 복약지도 변화를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심야약국 운영도 전국에 30~40개에 불과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 심야·야간·공휴일에 구입 불편을 겪는 대표적인 일반의약품인 제산제, 지사제, 화상연고, 항히스티민제 4개 품목을 추가로 안전상비의약품에 포함시켜 24시간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약사회가 강력히 반대하는 모양새는 국민 정서나 여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결과다.

약사의 전문성은 '복약지도'에 있다.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함에 있어서 편의점 점원과 극명한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약사의 복약지도다. 그런데 약사들은 이 복약지도 무기를 그동안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 같다. 약사의 복약지도보다는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의약품의 설명서가 더 이해하기 쉽고, 인터넷에는 안전상비의약품 복용 관련 각종 정보들이 넘쳐난다.

그렇더라도 약사의 전문성은 ‘복약지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이 복약지도를 더 전문화하고 환자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약사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안전상비의약픔에 몇 가지 적응증이나 품목을 더 추가하거나 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 보다는 약국의 약사가 편의점 점원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복약지도를 해야 하고, 야간·심야·공휴일 일반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는 공공심야약국 운영 등의 공익적 노력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해야 안전상비의약품의 적응증과 품목 확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의 요구나 정부 당국의 방침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약사회가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의약품 적응증과 품목들은 앞으로도 계속 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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