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위안에 불과한 수술실 감염관리

심리적 위안에 불과한 수술실 감염관리

의료진도 알고 있는 재사용 금지 1회용품만 219종… 대책은 ‘無’

기사승인 2018-08-12 01:00:00

수술환자의 감염문제가 운에 맡겨지고 있다. 운이 좋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거나, 세척과 멸균 등 재처리가 제대로 된 치료재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식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을 의료진도, 의료기관도, 보건당국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전국병원감염감시체계(KONIS) 등에 따르면 의료기관 내 수술부위감염은 10명 중 1명에 이른다. 그로 인한 분쟁조정건수도 전체 조정신청건수의 45.1%에 달한다. 미생물 검사에서 균주가 증명된 병원감염에 국한해 이 정도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의료진들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고 평한다. 원인으로 1회용품의 재사용과 대여기구 등의 소독·멸균 문제가 거론되기 때문이다. 관련 학회가 지난해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30% 의료기관에서 감염관리가 미흡하거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수술방에서 소독의 의미가 거의 없다는 침전소독을 89%의 병원에서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고, 멸균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되지 않는 급성멸균 후 환자에게 사용하는 경우도 64%에 이르렀다. 멸균을 확인하는 등 재처리과정이 전담전문가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심지어 상급종합병원에서 급성멸균방식이 더 자주, 더 많이 쓰이고 있었다. 기구가 충분치 않거나,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하물며 소독과 멸균조치가 이뤄졌다지만 1회용품으로 규정된 기기 혹은 기구들조차 이런 저런 이유로 재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재사용되는 1회용 의료기구는 도대체 어느 정도이고 그 심각성은 얼마나 될까. 이들에 따르면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치료재료는 약 2500여종이다. 이 가운데 재사용되고 있는 1회용 수술물품으로 재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이 분류한 것만 219종에 달했다.

이를 굳이 다시 감염예방에 효과적이거나감염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것침습적 재료이거나 내구성에 문제가 있어 재처리하면 안 되는 것으로 따져 순위를 매겼을 때 1순위가 95, 2순위가 71, 3순위가 58개였다적어도 95개는 쓰고 버려야함에도 다시 쓰인다는 것이다.

이유는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보건당국의 느긋함 혹은 무신경함 때문으로 풀이된다.

의료계 등 전문가들은 적정수가논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정부도 인정한 수술행위에 대한 낮은 보상에 더해 의료행위 중심의 수가설계로 인해 1회용품 등 치료재료에 대한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 손해를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병원수술간호사회 이선영 이사(일산병원 간호팀장)치료재료나 소독·멸균에 대한 비용이 최근에서야 일부 반영됐지만 여전히 비용청구를 할 수 없는 비산정 재료가 많다. 복강경 관련 치료재료는 수가가 책정 후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인상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사용량에 따른 처방방식도 문제다. 이 이사는 지금의 수가체계로는 10개 묶음 포장이 된 재료들 중 5개를 사용할 경우 남은 5개는 재처리를 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 포괄수가가 적용되는 수술의 경우 정액수가에 포함돼 있어 별도청구도 불가능하다면서 환자의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또는 수술의 편의를 위해 재멸균이 이뤄지고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의 수술부위 감염여부를 운에 맡겨야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재사용해서는 안 되는 1회용 수술물품을 명확히 규정한 후 재사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미국처럼 재사용이 가능한 1회용품을 의학적으로 구분해 엄격히 관리해야한다고 제안했다.

환자 맞춤형이거나 고가라는 이유로 개별 수술실에 각각 구비할 수 없는 대여기구들의 경우에는 소독과 멸균을 지키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은 만큼 적어도 규정에서 정한 재처리 방식을 충실히 따르거나 1회용품을 재사용하지 않도록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홍승령 서기관은 지난 6월 의료관련감염 종합대책에 포함시켰지만 소독·멸균이나 전담인력을 포함한 감염예방활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며 구체화시켜가고 있다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많이 고민하고 잘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설, 인력, 각종 활동의 기준과 범위, 등급을 어디까지 나눌지, 어떤 식으로 의료기관들의 참여를 유도할지 등을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면 못 따라오는 기관들이 있을 수 있고, 예방활동 등을 어떤 기준에 맞춰야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한 병원 관계자는 사정을 아는 이들이 만약 본인 혹은 가족이 이 같은 상황에서 수술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새 기구를 사용하라고 하지 않겠느냐수년 동안 몇 개 품목씩 급여화되는 것을 기다리라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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