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하 통합만관제)’을 하반기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보건의료계를 구성하는 여러 직역단체들이 반색하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서로가 국민 건강을 위해 자신들의 직역이 꼭 참여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논의나 계획에서 제외됐다며 볼멘소리를 내거나, 상대직역을 제외시켜야한다는 등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논쟁 속에서 “진정 환자를 위한 고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일부 있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동네의원에서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에 대한 포괄적인 관리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면서 시범사업에 800억원을 투입, 환자의 질환 중증도 및 상태를 충분히 평가해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주기적인 점검 및 평가를 통해 표준모형을 설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보건소와 건강생활지원센터 같은 지역 보건의료자원과 지역의사회를 중심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이 연계해 운동·영양 등 생활습관과 관련한 전문 교육·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환자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연계해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들이 일차의료를 신뢰하며 이용할 수 있고,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질환의 예방과 관리를 위한 적정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지역사회는 이를 위한 자원의 연계와 활용체계를 갖춰야한다”면서 시범사업의 의의를 강조하기도 했다.
◇ 보건의료단체들, “우리가 만관제 책임질 전문가”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13일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추진단 구성 및 기존 시범사업의 통합모형 마련에서 의료계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점에 대해 문제 삼으며 “이미 짜여 진 각본 속에서 들러리 세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의사의 주도적인 사업 참여보장과 시범사업 안착 및 성공을 위해 협의해왔던 의료계의 노력을 간과하고 사전논의 없이 추진단을 구성했으며, 현장전문가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운 추진위원회 논의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약사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도 정부의 시범사업 추진방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영양사와 운동치료사 등도 포함됐는데 환자의 의약품 복용 등 약력관리를 해야 할 약사나 일차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절대 다수인 간호조무사가 정책계획과 결정에 빠졌다는 불만이다.
대한약사회는 외래약국을 포함해 체계적인 약물관리 서비스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포괄적 약력관리를 통한 환자치료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1차 의료기관 만성질환관리 효율성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거론해왔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도 14일 “2016년 기준, 의원과 한의원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가 8만7142명으로 전체 간호인력의 85%에 달한다”면서 “간호조무사를 제외하고는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를 중심으로 한 간호사들과 영양사 및 운동치료사 등 시범사업의 한 영역을 담당하게 된 직역들은 환영의 뜻을 전하며 정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 케어가 정착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발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 전문가 중심 시범사업에 회의감 느끼는 환자들
이처럼 전문가단체들의 환영 혹은 비난 속에서 환자들도 의견이 나뉘는 모습이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보건의료계 특히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를 향해 날을 세웠다. 국민건강을 위해 열악해져가는 일차의료 환경을 개선하고자 준비한 정책이 또 무너질까 우려스럽다는 입장이다.
이와 달리 만성질환관리를 비롯해 질병을 치료하고,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환자들의 능동성을 무시한 ‘1차의료 살리기’, ‘직역 활성화’에 집중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생활습관이나 행동변화를 유도해야하는데 정작 환자를 움직일 동인이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정부의 시범사업 발표내용을 살펴보면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각 서비스의 장점을 연계해 개선된 것이 전부다. 논의 또한 의료기관 및 전문가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수가책정 및 방안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와 관련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환자를 위한 시범사업에 정작 환자는 빠진 이상한 정책”이라며 기존 만성질환 관리사업의 연장선에 불과할 뿐, 정작 의료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치료에 참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구조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병원은 먼성질환관리의 극히 일부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라며 만성질환은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어떤 치료를 받는지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 혹은 가정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행동하고 관리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또한 일부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 중심의 만성질환관리는 궁극적으로 나아가야할 제도의 모습”이라며 “이를 위해 갖춰야할 것들,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고 확인하기 위해 시범사업이 추진 중”이라고 답했다.
다만 치료를 위한 간호사와 의사 중심의 체계가 구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거론하며 “환자가 적절한 관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수준과 기준을 세울 필요는 있다. 여러 직역들을 모두 포함한 포괄적인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올 하반기 시범사업을 시작해 2019년 하반기까지 1년간 사업을 진행한 후 성과를 분석해 만성질환 관리모형을 구상하고, 이를 바탕으로 본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그 또한 환자 중심으로의 사업구상과는 괴리가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소비자단체들이 주장하는 환자 중심의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에는 재정적으로나 보건의료체계상 어려운 점이 많다”며 “주어진 자원 하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정부주도가 아닌 보다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논의가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