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낙태 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면허정지 1개월로 처벌하는 개정안이 시행된 가운데 산부인과 의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처분 기준을 정비한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안’의 시행을 알렸다. 특히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 형법상 불법 낙태를 집도한 의사에 1개월의 자격정지 처분을 내린다는 내용이 명시돼 산부인과 의사들의 분노를 샀다.
개정안의 문제 규정은 낙태 수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270조에 따른 것이다. 이는 앞서 2016년 9월 말 복지부의 입법예고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당시 산부인과 등 의사단체들은 즉각 반발, 복지부에 낙태 관련 규정 제외를 요구했다. 또 해당 입법예고를 계기로 시작된 여성단체 비웨이브의 ‘낙태죄 폐지’ 시위는 최근까지 약 15회째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인 반발이 적지 않음에도 결국 복지부는 개정안에 낙태 조항을 포함한 것이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는 성명을 통해 “복지부는 현재 낙태수술의 위헌 여부를 두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금일부로 낙태수술을 하는 의사들에게 무조건 1개월의 의사 면허정지 처분을 하겠다는 고시를 전격 강행했다”며 “고시가 철회될 때까지 낙태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이번 조치가 의료현실과 맞지 않으며, 오히려 임신중절수술을 음성화해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영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총무이사는 “형법상 낙태죄는 위헌요소가 많고, 이미 사문화된 법이다. 실제로 낙태죄로 2년 선고를 받은 의사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선고유예로 끝난다. 심지어 위헌 판결을 앞두고 있고 사회적인 논란이 많음에도 굳이 비도덕적 의료행위 목록에 낙태를 명시한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산부인과 의사를 비도덕적 의료인으로 낙인을 찍고 압박하는 현 상황은 결국 분만 인프라를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 이사는 “낙태죄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다. 심지어 뇌가 없는 무뇌아 조차 우리나라에서는 낙태가 불법이다. 뇌가 없는 데 인간으로서 의식이 있겠나. 태어나자마자 사망하는 무뇌아를 뱃속에서 길러서 낳아야만 하는 산모의 고통을 아느냐”며 “현실을 무시한 법 때문에 의료진도 고통을 받는다. 전공의들의 산부인과 지원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이라는 짐을 얹으면 누가 산부인과 의사를 하겠느냐”고 호소했다.
‘낙태를 범죄로 볼 것인가’하는 문제는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범죄로 보는 형법(270조, 269조)이 헌법에 위배되는지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산부인과의사회는 “의학적으로 12주까지는 인간으로서 의식이나 감각이 없는 상태”라며 “적어도 임신 12주까지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허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OECD 30개 국가 중 23개국도 ‘사회적·경제적 적응 사유에 의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한다.
그러나 의사회의 요구대로 복지부가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안’의 낙태 관련 조항을 철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관계자는 “입법예고 당시 자격정지 기간이 최대 12개월이었던 것을 의료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1개월로 줄였고, 형법상 처벌을 받은 사항에만 처분하기로 하는 등 의견 수렴을 거쳤다”며 ”헌법소원에서 위헌 판결이 나면 개정이 이뤄지겠으나 이미 시행된 것을 삭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의사들의 인공임신중절 전면 거부 선언에 대해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모든 산부인과 의사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임신중절 거부) 때문에 국민들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