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안전, 카드수수료에 위협받다

환자안전, 카드수수료에 위협받다

정부 카드수수료 개편 빌미로 병원만 옥죄 배불리려는 카드사들

기사승인 2018-08-23 09:06:54

최근 대형병원들로 카드사들의 수수료율 인상통보가 날아들었다. 대부분이 0.1~0.2%p(포인트) 인상이다. 일부는 금융당국이 내놓은 수수료율 상한인 2.3%를 요구한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다수 병원들에서는 병원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등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그 시작은 지난 6월 26일이었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와 국회가 영세·중소가맹점, 그 중에서도 소액결제가 많은 업종의 카드수수료 부담경감을 위해 ‘밴(VAN) 수수료 체계개편 방안’을 내놨다.

당정(黨政)은 카드수수료 원가에 해당하는 ▶조달비용 ▶대손비용 ▶마케팅비용 ▶일반관리비용 ▶밴수수료 중 카드결제시 승인과 매입업무를 카드사 대신 처리해주는 밴사에게 지급하는 수수료 산정방식이 소액결제가 많은 업종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율이 적용된다고 봤다.

실제 건당 100원으로 밴수수료가 책정될 경우 결제금액이 1만원인 가맹점의 수수료는 1%지만, 결제금액이 100만원인 가맹점은 0.01%로 다르다. 이에 당정은 관계부처와 협의해 정액으로 책정하던 밴수수료를 결제금액에 비례하도록 정률제로 변경, 7월 31일 시행하도록 했다.

문제는 정률제로 도입과정에서 의료기관이 ‘기업형 업종’으로 분류되고, 이를 이용해 카드사들이 자기잇속을 차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카드사들이 정책변화를 근거로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다.

당초 당정은 개편안에 따라 전체 의료기관의 64.7%를 차지하는 292개 종합병원급 의료기관 평균0.08%p 수수료 인상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액으로는 평균 1496만원이다. 하지만, 대형병원들에게 통보된 내용을 일부 파악한 결과는 당정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10여개 상위 대형병원들을 대상으로 카드사들이 제시한 카드수수료율을 따를 경우 발생하는 추가수수료를 살펴본 결과, 평균 1달에 1~2억 원의 지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소위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의 경우 4~5억원, 많게는 7억원까지 부담이 증가할 전망이다.

◇ ‘카드수수료 1억원=진료비 100억원’… 위협받는 환자안전

“병원에서 1억원을 벌기위해서는 100억원어치 진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카드사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수수료율을 올리는 것만으로 1달에 1억원을 가져가려 합니다. 만약 개편되는 카드수수료 체계대로 수수료율이 정해진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이처럼 병원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종합병원 급 의료기관 중 영리를 추구할 수 없는 비영리의료법인이 79.5%에 달하는데다, 병원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료비는 정부정책에 의해 원가 80%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돼 지급되고 있다.

심지어 비급여로 불리는 건강보험 외 영역 또한 고시 등으로 통제되고 있다. 전체 진료비 중 30% 가량을 차지하는 약품비와 치료재료는 ‘실거래가 상환제’로 인해 의료기관이 구입한 약품비와 치료재료에 어떤 이윤도 인정받지 못하고 구입가격만을 건강보험에서 보전 받는다.

이 같은 여건으로 인해 의료기관의 평균 이익률은 1~2%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라고 보건산업진흥원 등은 추산했다. 즉, 카드사들이 요구한 카드수수료율 0.1~0.2%p 인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병원은 1달에 100억원에서 1000억원의 수익을 더 올려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과 물리적 한계, 제도적 규제로 인해 병원에서 진료수익을 올리는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진료시간과 인적, 물적 자원의 한계에 법으로 통제되는 진료비로 인해 수익을 (1달에) 100억원 이상 늘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상급병실료 급여화, 선택진료비 폐지 등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보장성 강화정책으로 인해 손실폭이 큰 상황에서 카드수수료까지 인상될 경우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당장 인력 축소 혹은 비정규직화를 거론했다.

그는 “고정비용이나 가격조정이 불가능한 영역이 많고, 인건비 비중이 30~40%로 높은 의료서비스 특성상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쥐어짜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면서 “특히 감염 등 손이 많이 가는 환자안전 분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 병원이 기업형 업종?… 높아지는 여신금융업법 개정 목소리

카드수수료 인상에 환자안전만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병원들은 인건비를 줄이는 것과 함께 진료량과 비급여 진료를 늘리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한 환자부담이나 건강보험 재정, 보건의료제도에 악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카드수수료 원가 중 한 항목의 산출방식을 바꾼 것이 보건의료계에 태풍을 불러온 셈이다. 이에 병원계가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대한병원협회(회장 임영진)는 21일 카드수수료 인상에 대한 민원을 접한 후 긴급으로 현황조사에 나섰다.

카드사들이 제시한 수수료율 인상현황과 현행 산정방식의 개선점 등 병원들의 의견을 받아 일방적인 통보에 의해 결정되는 관행을 개선하고 의료기관을 옥죄는 수수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현재 병원들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며 “현황조사를 바탕으로 건의서를 작성해 금융위원회와 관계부처에 전달하고, 사태의 원인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를 찾아 여신금융업법 등의 개정을 위해 나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들의 논리는 명확하다. 의료는 법률상 필수공익사업으로 분류돼있고, 90% 이상이 민간의료기관이지만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비영리법인으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며, 법이나 제도로 통제받는 영역으로, 가격을 자유롭게 결정해 수익을 내는 자동차 등 ‘기업형 업종’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계의 이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벽이 높아 보인다.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신용카드사들이 이를 수용하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6년 12월 6일 이학영 의원이 건강보험법상 요양기관의 경우 신용카드 가맹점수수료를 우대적용 하도록 하는 내용의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금융위원회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금융위가 밝힌 이유는 교육 등 공공성이 있는 타업종도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하지 않고 있으며, 요양기관을 타 업종에 비해 우대할 근거가 부족해 업종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할 경우 업종과 관계없이 적정원가에 기반해 카드수수료율을 부과하는 현행 체계와 상충돼 업종별 이익단체의 수수료 인하요구가 유발되고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카드사들 또한 일방적으로 인상을 통보하며 “정부의 정책결정으로 수수료인상은 불가피하다. 협상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0.1~0.2%라는 카드수수료 인상률 산정근거는 ‘영업비밀’이라고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병원계 관계자는 “공공성을 강조하며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분류하고, 정작 기업에 대한 제도적 혜택에서는 배제하는 이중적 잣대”라고 비난했다. 이어 “일방적인 카드사의 수수료 통보관행을 없애고, 신용카드사의 전횡도 처벌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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