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공임신중절은 비도덕? 의견수렴없는 복지부

[기자수첩] 인공임신중절은 비도덕? 의견수렴없는 복지부

기사승인 2018-08-28 01:00:00

진료 중 성범죄, 불법 마약 투약 및 제공, 무허가 의약품 사용, 그리고 낙태. 보건복지부가 꼽은 대표적인 비도덕적 진료행위다.

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안을 지난 17일부터 시행했다. 네 가지를 제외한 음주 수술이나 진료 중 환자 폭행 등 나머지 유형은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묶어 개정안에 넣었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의사들의 비도덕적 행위를 허다하게 목격했다. 썼던 주사기를 재사용하는 의사, 카데바 실습 중 장난스러운 셀카를 찍은 의사 등 다양하다.

수많은 비도덕적 진료행위 중에서 보건당국이 대표로 꼽을 정도면,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다는 낙인이다. 그런 행위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그런데 복지부의 TOP4에 인공임신중절, 즉 ‘낙태’가 들어갈 자격이 있을까. 진료실에서 환자를 성폭행한 의사와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한 의사. 이 둘에게 같은 낙인을 찍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도덕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이다. 여기에 비춰보면 우리 사회에서 ‘낙태’는 비도덕이라 정의할만한 합의가 되지 않았다. 낙태에 대한 입장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17일 갑작스럽게 시행을 알린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이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는지도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다.

애초에 이 법은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구체적인 유형이 정해져있지 않아 다나의원 집단 감염 사태처럼 국민건강상의 심각한 위해가 발생한 경우 처벌 기준과 수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 의사협회도 필요성에 공감, 복지부에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목록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6년 9월 말 복지부가 법안 초안을 공개하고 입법예고하자 논란이 일었다. 예상치 않게 ‘낙태’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된 것. 의사협회가 제시한 목록에도 ‘낙태’는 없는 항목이었다. 당시 여성단체와 의사단체는 즉각 반발,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도 입법취지에도 맞지 않다며 해당 항목의 삭제를 요구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위헌 판결을 앞두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2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낙태죄 폐지’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동참해 청와대의 답변을 이끌어 낸 바 있다. 그리고 입법예고를 계기로 시작된 여성단체들의 ‘낙태죄 폐지’ 시위는 최근까지도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행위 TOP4에 기어이 ‘낙태’를 포함했다. 아직 형법상 낙태죄가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음주 수술, 진료 환자 불법 촬영, 진료 중 환자 폭행 등과 같이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포괄해도 됐을 텐데 말이다.

앞서 2016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정진엽 장관은 "임신중절 수술은 다태아 인공수정 과정 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가 있다. 퇴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재검토를 한 결과가 이렇다니 암담하다. 오늘(27일) 산부인과 의사들은 인공임신중절 전면 거부를 선언했다. 복지부가 추진하는 저출산 대책이 부디 강제출산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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