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가 죄라면 ‘사후피임약’이라도 약국서 팔라

낙태가 죄라면 ‘사후피임약’이라도 약국서 팔라

"낙태는 처벌하면서 사후(응급)피임약 접근성 낮아" 호소 …식약처는 '검토 계획 無'

기사승인 2018-09-05 01:00:00

사후(응급)피임약을 약국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낙태 수술 의사를 처벌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사실상 모든 낙태가 금지된 상황이 되니  '낙태가 죄라면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도 열어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보면 ‘사후피임약 약국에서 구매 가능하도록 만들어 달라’는 제목의 청원에 국민 3000여 명이 참여해 주목된다.

해당 청원의 청원자는 낙태죄와 관련 “결국 임신으로 인해 삶의 변화가 오는 것은 여성”이라며 “사후피임약을 먹으면 태아가 수정되기 전에 안전하게 임신중단을 함으로써 여성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후피임약은 수정란이 자궁내막에 착상하는 것을 방해해 원치 않는 임신을 막는 의약품이다. 성관계 후 12시간 이내에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95%)가 좋고, 늦어도 72시간 내에는 복용해야 효과(42%)를 볼 수 있다. 다만, 현행법상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구매할 수 있다.

앞서 지난 2012~2016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검토한 바 있지만 의료계, 종교계 등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당시 식약처가 3년간 모니터링한 사후피임약의 중대한 부작용 보고건수는 2013년 4건, 2014년 0건, 2015년 0건으로 적게 나타났다. 사전피임약의 경우 2015년 14건이었다.

이 청원자는 “사후피임약이 대중화되지 않고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은 여성을 임신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닌, 정부가 판단 하에 임신을 관장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하고 “낙태가 죄라면 그 전에 방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있어야 하며, 사후피임약을 통해 여성에게 출산에 대한 선택과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성은 출산을 하는 도구가 아니며, 아기 또한 낙태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실질적으로 안전하며, 높은 피임률을 가진 사후피임약을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이 같은 목소리에 대한약사회는 “사후피임약은 일반의약품 분류가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사실상 응급상황에서 빨리 먹어야 하는 사후피임약을 가지고 의사가 진료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사후피임약은 최대 72시간 이내에 먹어야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며,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할 만큼 특별한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는 추세”라며 “제도는 생명체와 같이 사회와 환경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실질적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면 약국에서 접근하도록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약사회와 의견을 같이했다. 경실련 사회정책팀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그간 음성적으로 시행되던 낙태조차 막겠다고 한다. 여성이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런 요구가 나왔다고 본다”며 “사후피임약의 경우 의학적 기준에 있어서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할 이유가 없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의료계는 난색을 표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 김동석 회장은 “사후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하자는 것은 낙태 문제의 논점에서 벗어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의사를 통해 처방하도록 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낙태와 연관해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면) 환자들이 필요없는 약을 먹게 되거나 오남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 자주 먹게 되면 내성이 생겨 정작 필요할 때 효과가 감소한다. 호르몬제이기 때문에 함부로 먹으면 환자 건강을 위협하고, 생리불순 등 합병증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후피임약 관련 검토 계획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김상봉 식약처 의약품정책과장은 “이미 2012년도에 일반약 전환 재분류를 검토했고, 당시 3년 동안 검토한 결과를 2016년도에 발표한 바 있다. 충분한 사회적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고 2년도 채 안됐다”며 “일반약 전환 요구는 존중받아야할 의견이지만 의견이 나올 때마다 재검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 과장은 최근 일각의 낙태약 ‘미프진’ 허용 요구와 관련해서도 “미프진은 현재까지 허가 신청조차 없다. 또 현행 법률상 약물에 의한 낙태는 법 위반 사항이기 때문에 허가 신청이 오더라도 국내에서 허용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복지부의 행정처분 유예 결정에도 ‘낙태 전면 거부’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김동석 회장은 “복지부가 행정처분을 유예하겠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당장 어제만 해도 의사회원 중 낙태로 수사 받은 분이 있다”며 “정부가 현실적인 법을 만들 때까지 의사들은 불법 중절수술을 거부할 생각이다. 부디 이번만큼은 정부가 나서서 낙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오는 6일 보건복지부와 대화자리에 나설 예정이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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