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투자가 이뤄진 영리병원으로는 처음으로 추진됐던 ‘녹지국제병원’ 설립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미 건물이 완공되고, 인력이 고용돼 일부지만 병원의 기능을 수행할 준비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최종 승인과정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지난달 16일과 17일 이틀간 제주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여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1.6%가 개설에 반대한 반면 24.6%만이 개설을 찬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만약 이들의 전망처럼 녹지국제병원 설립이 좌초될 경우 사후처리가 문제다. 고현수 제주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열린 도의회 본회의 도정질의에서 “800억원에 가까운 손해배상소송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제주도청과 원희룡 지사에게 대책을 강구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원 지사는 “새정부 출범 후 비공식적으로 다각도의 루트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타진이 있었고 제안도 오고갔지만 결론은 없었다”며 “누구도 이에 대해 책임을 선뜻 지려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정부가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 왜 녹지병원 설립무산에 정부책임이 거론되나
원 지사가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답변을 한 이유에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를 배제하더라도 보건복지부가 2015년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를 검토한 후 설립을 사전승인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원칙적으로 의료기관의 개설허가권은 해당 의료기관이 들어설 지방자치단체에 있어 녹지병원 사태의 책임도 제주도에 있다. 하지만, 사전에 보건복지부에서 사업계획이 타당한지, 의료법 등의 위반사항이나 미비함은 없는지를 검토해 승인이 이뤄지는 만큼 정부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실제 복지부는 지난 2015년 초 녹지국제병원의 모기업이자 중국의 부동산투자그룹인 녹지재단의 우회투자 가능성을 문제 삼아 한차례 사업계획서를 반려했고, 같은 해 12월이 돼서야 수정된 사업계획서를 승인했다.
이에 도 관계자는 “특정 상황을 가정해 답변을 할 수는 없다”면서도 “원론적으로 허가권자인 제주도에 책임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의료기관의 개설허가에 정부도 관여하고 있다”며 “소송에 들어간다면 재판부에서 여러 사항들을 고려해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의료기관의 개설허가권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면서 “복지부에서는 사업계획서를 검토해 합당한지 여부 만을 판단할 뿐이다. 이번 사안에 대해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원칙적으로 책임을 질 개제는 없다”고 전했다.
◇ 녹지국제병원 설립 좌초되면 대안은?
책임공방이 치열한 가운데 제주도에서 꾸린 공론조사위원회는 의료연대본부와 같은 기간 지역민 3000명을 대상으로 1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설문조사결과가 공개될 경우 현재 200명의 진행하고 있는 도민참여단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서다.
도 관계자는 “설문결과에 영향을 받는 밴드왜건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전문가들의 논의결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도민참여단 구성도 3000명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른 찬반비율을 그대로 가져온 축소판으로 공정성을 기했다. 허가여부는 10월 초쯤 발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의료연대본부 관계자를 비롯해 고 의원은 도민참여단 구성원의 찬반비중을 동률로 뒀어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제주도 공론조사모델로 가져온 신고리 5, 6호 원전 재가동 문제의 경우 공론참여단 구성을 동률로 뒀다”며 공정성을 의심했다.
의료연대본부 관계자는 “당초 3000명의 설문결과를 공개해야한다. 도민참여단 구성원의 찬반비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투명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과가 공정하다고 믿을 수 있겠느냐”며 “구성원 비중과 결과를 모두 공개해야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결과가 공개된 후 대처방안에 대해서도 시민사회와 제주도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녹지국제병원을 영리병원이 아닌 다른 형태의 대안으로 제시한다면 어떤 것이 좋겠느냐’는 의료연대본부의 질문에 제주도민 1000명 중 220명은 비영리법인으로의 전환을, 595명은 서울대병원 등 국공립병원 유치가 좋겠다고 뜻을 내비쳤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0%(100명), 영리병원을 그대로 진행해야한다는 의견은 8.5%(85명)였다.
이와 관련 노조 관계자는 “당초 여러 귀책들이 존재하는 만큼 손배액이 800억원이라는 것도 과장됐다”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건물을 매입하고 고용된 인력을 인계해 공공병원이나 국공립대병원으로 꾸리면 문제가 다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 관계자는 현재 제주도에서 공공의료원이나 국공립대병원을 설립하거나 유치할 계획은 없으며 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그는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제주도의 공공병상은 전국대비 상대적으로 높다”며 “전국평균이 현재 10.5%인데 반해 제주도는 29%다. 비공식적으로 8월 집계한 바에 따르면 30%를 넘어섰다”고 답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