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로그인] 저무는 대전격투 게임…도전이 필요해

[게임 로그인] 저무는 대전격투 게임…도전이 필요해

기사승인 2018-09-11 05:00:00

1990년대 ‘오락실’로 불린 아케이드 게임장을 주름잡던 대전격투 게임들은 콘솔 기기와 함께 가정 안방에 진입했고 이제는 PC에서도 온라인으로 실력을 겨룰 수 있다. 동전을 쌓아놓고 차례를 기다리다 승패에 서로 얼굴을 붉히던 진풍경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게임 플랫폼과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그래픽, 호쾌한 액션을 갖추고 집에서도 손쉽게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실력을 뽐낼 수 있게 됐지만 대전격투 게임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장기간 시리즈를 이어온 일부 인기작을 중심으로 언제부턴가 ‘마니아 중심’ 장르가 된 지 오래다. 격투 게임 팬이라면 입맛이 씁쓸한 부분이다.

▶ ‘철권7’의 영역 파괴, 왜?

지난 6일 반다이남코의 인기 3D 격투 게임인 ‘철권7’ 시즌패스 2가 출시됐다. 일부 캐릭터 기술 판정 등의 변경과 기존 시리즈에서 인기 있던 ‘안나 윌리엄스’, ‘레이 우롱’ 등 6명의 신규 캐릭터를 포함한다.

시즌패스2 뚜껑을 열어본 이용자 다수는 캐릭터 밸런스 패치 등을 반겼지만 지난달 해당 내용이 공개됐을 당시, 아니 그 이전부터 반다이남코의 행보는 엇갈린 반응을 받아왔다. 그 중 다수는 ‘이제 철권이 아닌 것 같다’, ‘이제 슈퍼마리오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등 비판 아닌 비판을 포함한다.

기존 시리즈에서 적잖은 사랑을 받은 안나와 레이가 돌아온 것은 오랫동안 철권을 즐겨온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헌데 이번에 공개된 새 캐릭터 중 드라마 ‘워킹데드’에 등장하는 네간이 포함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 같은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철권7에 이처럼 기존 시리즈 맥락과 관계없는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타사 격투 게임 캐릭터인 ‘기스 하워드’나 ‘아쿠마’가 추가된 데 이어 판타지 RPG(역할수행게임) ‘파이널판타지15’ 주인공인 ‘녹티스 루시스 카일룸’까지 등장하면서 ‘격투 게임판 시공의 폭풍’이라는 웃지 못 할 농담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시공의 폭풍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여러 게임 캐릭터가 대거 등장하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별칭이다.

철권7의 이 같은 ‘마구잡이식’ 영역 확장은 이용자 저변이 줄어들고 있는 격투 게임 시장의 분위기에 기인한다.

다양한 기술과 콤보, 심리전 등 경험이 많은 이용자들의 실력에 비해 신규 이용자가 쉽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에 격투 게임은 보다 직관적인 게임 플레이를 제공하는 슈팅 게임 등에 인기를 잠식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타크래프트’ 등의 흥행과 함께 오락실 문화가 급속도로 PC방 중심으로 전환된 분위기도 단단히 한몫 했다.

▶ 시대를 선도한 격투 게임 변천사

최근까지 비교적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는 격투 게임으로는 철권 외에 2D 격투 게임의 선구자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부터 서구 시장에서 사랑받는 ‘모탈컴뱃’ 시리즈 등이 있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시대를 선도하는 시스템과 콘텐츠를 선보인 프랜차이즈다.

1991년 세상에 나온 캡콤의 ‘스트리트파이터2’는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대전격투 게임이 차용하고 있는 방향키(레버) 커맨드 입력 시스템을 정립한 타이틀이다. 그 인기는 1990년대 스트리트파이터2 게임 사운드로 전국의 오락실을 흔들었고 세계 각국에서 영화, 애니메이션 등 2차 콘텐츠가 쏟아지는 현상까지 이끌었다.

스트리트파이터2의 대성공은 이후 SNK의 ‘아랑전설’, ‘용호의권’,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의 탄생을 이끌었고 ‘월드 히어로즈’ 시리즈 같은 아류작도 다수 만들어지는 데 일조했다. SNK의 격투 게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던 ‘네오지오’는 ‘100메가 쇼크’라는 슬로건으로 1990년대 가정용 콘솔의 귀족 취급을 받기도 했다.

스트리트파이터의 커맨드 시스템은 이후 킹 오브 파이터즈, ‘길티기어’ 등 2D 격투 게임 시리즈와 함께 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콤보 액션으로 발전했다. 이외에 무기를 든 사무라이의 대결을 그린 ‘사무라이 스피리츠’나 실사 기반 그래픽, 방어 버튼 시스템을 앞세운 모탈컴뱃 등이 차별화 된 게임성으로 사랑을 받았다.

1994년에는 세가에서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3D 그래픽 기반의 ‘버추어파이터’를 처음 선보였고 이듬해 남코(현 반다이남코)가 철권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본격적인 3D 격투 게임의 장을 열었다. 이들의 경쟁은 이후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의 콘솔 타이틀 대결로도 이어졌다.

특히 3D 격투 게임은 기존 2D 게임들에 비해 상대방과의 거리나 기본기, 타이밍 등 심리전 요소가 빠른 커맨드 조작보다 상대적으로 강조됐기에 기존 격투 게임 실력에 한계를 느끼던 이용자들도 접근할 수 있었고 고유의 시장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다수의 여성 캐릭터로 인기를 누린 ‘데드 오어 얼라이브’나 무기 액션을 선보인 ‘소울칼리버’ 시리즈 등도 이에 속한다.

버추어파이터 시리즈는 펀치, 킥, 방어 3개로 단순화 된 버튼과 조작 방식, 범위 밖으로 나갈 경우 패하는 ‘링아웃’ 시스템 등으로 심리전 특성을 극도로 끌어올렸고 후발주자인 철권은 양손과 양발에 해당하는 4개 버튼의 조합 콤보 시스템과 과장된 액션의 타격감, 다수의 캐릭터 등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런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이들 격투 게임은 당대 최고 수준의 인기를 누렸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일부는 게임사의 경영 악화로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고 살아남은 게임들도 높은 진입 장벽으로 ‘고인물 게임’이라는 핀잔을 듣고 있다. 철권7의 최근 모습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용자 간 실력 차이가 진입 장벽이 되는 격투 게임의 특성이자 한계 때문이라지만 전성기 격투 게임의 다양한 시도를 돌아보면 작금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2D 격투 게임에서는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가 칼을 맞대고 힘을 겨루거나 상대의 무기를 파괴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었고 가정용 콘솔로 출시된 3D 게임 중에는 한층 더 참신한 도전들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스퀘어소프트(현 스퀘어에닉스)가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선보였던 ‘토발’, ‘부시도 블레이드’ 등 시리즈는 지금의 주류 대전격투 게임과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아쉽게도 후속작이 이어지지 않았다.

‘드래곤볼’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참여한 ‘토발2’는 격투 게임과 다소 이질감이 있는 캐릭터로 호불호가 갈렸지만 3D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잡기, 반격기 공방의 치열함이 철권 시리즈를 능가할 정도였다. 현실성에 눈을 감아준다면 오히려 오늘날 ‘UFC’ 시리즈 이종격투기 게임의 느낌을 선사했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RPG 모드까지 지원했다.

칼싸움 소재인 부시도 블레이드 역시 3D 공간 이동이 가능했고 기존 격투 게임과 달리 체력 게이지가 없이 머리나 몸통을 맞으면 한 방에 게임이 끝나는 ‘진검 승부’의 묘미를 제공했다. 상·중·하단 자세에 따라 공격을 튕겨내는 등의 시스템은 2017년작 ‘포 아너’의 3방향 공방과도 닮았고 부상을 입은 팔,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요소는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만약 이처럼 다양했던 전성기 격투 게임들이 보다 매력적인 디자인과 그래픽으로 무장하고 돌아오면 어떨까. 여전히 남아있는 팬들에게 보다 넓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갈고 닦은 실력을 자랑할 수 있는 격투 게임의 매력을 돌아볼게 하지 않았을 지 아쉬움이 남는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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