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경찰의 의료인 폭행피해 강경대응

말뿐인 경찰의 의료인 폭행피해 강경대응

너무 빈번해서?… 경찰, 의료기관 내 폭력사건 현황파악조차 못 해

기사승인 2018-09-28 01:00:00

의료인의 본분은 환자 치료다. 문제는 의료기관 특히 응급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하루에도 수명씩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일 오전 12시30분경에는 가천대길병원 응급실로 A(51)씨가 119구급차에 실려 왔다.

당시 A씨는 술에 만취한 상태였고, 폭행으로 인한 갈비뼈 통증 등을 호소했다. 의료진은 진단을 위해 X-레이 촬영 등 진료를 시도했지만, 돌아온 건 A씨의 욕설과 난동이었다. 심지어 진료를 거부하며 행패를 부리는 A씨를 제지하기 위해 출동한 B(23)씨 등 보안요원 3명을 폭력으로 신고하기도 했다.

출동한 경찰은 상황파악 후 A씨를 경찰서로 동행조사차 데려갔다. 하지만, 3시간 후인 오전 4시경 A씨는 경찰서에서 풀려나 다시 병원을 찾았고, 또 난동을 부렸다. 그럼에도 의료진은 본분을 지켰다. A씨를 달래며 진단과 치료를 마쳤고, 의료진이 한눈을 판 사이 A씨는 치료비를 지불하지도 않은 채 병원을 빠져나갔다.

지난 18일에는 전남 해남 C병원 응급실에서도 의료인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D씨는 만취상태에서 친구를 진료중인 의사에게 2차례 주먹을 휘둘렀다. 청진기도 사용하지 않느냐는 이유에서다. 이후 D씨는 경찰에 연행됐지만, 불구속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14일에는 대구 E병원에서 손가락을 다쳐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소란을 피웠고, 이를 제지하는 보안요원 등을 폭행해 경찰에 연행됐지만 30여분 후 유리조각을 들고 병원을 다시 찾아 의료진을 협박하고 난동을 부린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4일에는 서울 F병원에서 술과 수면제를 과다복용한 환자가 실려왔고, 정신을 차린 후 20대 초반의 여성인 1년차 전공의의 빰을 때리고 간호사를 발로 차 상해를 입힌 일도 있었다. 이 외에도 진료실 앞에 불을 지르는 등 알려진 건만 익산, 전주, 구미, 경산 등 3개월간 8건에 달한다.

이와 관련 한 의료기관 관계자는 “알려진 것만 그정도”라며 “응급실은 매일같이 주취자와 난동을 부리는 환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응급실에서의 폭행사건이 완전히 근절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를 최대한 억제할 수 있도록 경찰이 강경대응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강경대응 약속한 경찰, 하지만… ‘공문’ 전달도 아직

이에 경찰은 지난 4일 보건복지부 및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응급의학회 등 보건의료단체들과 최근 병원 응급실에서 발생한 의료인 폭행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 자리에서 “응급실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다루는 중요한 공간으로 의료진들은 촌각을 다투며 역할을 직접 수행하는 당사자인데, 이러한 응급의료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폭행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어 “이와 관련 의료계의 입장을 다각적으로 청취하고 예방·대응체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복지부와 함께 간담회를 개최했다”며 응급실의 공공성과 응급실 내 폭력행위의 위험성에 대해 공감을 표한 후 ▶신속출동 및 초동조치 ▶적극 대응 ▶엄정수사 ▶예방활동강화를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상황종료여부와 관계없이 신속하게 출동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불법행위가 계속될 경우 즉시 제압·체포하며, 필요에 따라 전자충격기 등을 활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아울러 응급실 내 폭력사범에 대해 공무집행방해사범에 준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고, 흉기를 소지하거나 중대피해를 발생시키는 등 중요사건의 경우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강경하게 처분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경찰차 순찰경로에 응급실을 추가해 예방활동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련의 약속은 번번이 깨지거나 일선 지역 경찰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연행된 환자들이 병원을 다시 찾아 보복행동을 하는 경우들이 벌어졌고, 위험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강경대응 등의 내용은 간담회 이전에 공문 등의 형태로 하달됐다”면서도 “실무 차원에서 응급의학회 등 보건의료계가 요구하는 내용을 포함해 매뉴얼 등을 추가로 만들어 전할 예정”이라고만 답했다.

게다가 응급실 폭행 혹은 의료인 폭행, 의료기관 내 폭행 등 관련 사건에 대한 집계는 이뤄지지도 않았다. 이 관계자를 포함해 복수의 경찰 관계자는 “별도로 관리되지 않는다”면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사항이 의료인 폭행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어 순수하게 관련 통계를 산출하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의료계 관계자는 “2013년에도 서울경찰청장은 진료실 폭력에 단호히 대처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며 “당시에도 해결의 희망을 가졌지만 의료인에 대한 폭력이 이뤄져도 출동한 경찰관은 적극적 개입보다 적당한 타협을 종용해온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의료기관 또한 병원의 이미지가 훼손될까봐, 혹은 추가적인 협박이 두려워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경찰조직의 강경대응 약속은 흉내에 불과하다. 현장조직이 변하지 않는 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적인 관측을 내놨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 또한 “사건에 대한 통계와 같은 기본적인 사항이나 경향을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응방법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나마 연일 사건이 보도되며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길 바랄 뿐”이라며 병원에서 별 탈 없이 하루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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