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도래하면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그간 문재인 케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해온 의료계가 정부와 ‘점진적’, ‘무기한’이란 전제아래 정책추진에 합의하며 보장성 강화정책이 추진력을 얻었다. 그러나 당초 정책목표의 달성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문재인 대통령은 1년여 전인 지난해 8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발표하며 대중 앞에서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재난적 의료비 지원확대, 본인부담 상한액 인하 등을 통해 건강보험 보장률 70%를 임기 내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 1년여 간 정책을 구체화하며 건강보험 보장성을 단계적으로 강화해왔다. 정부는 의료계와 건건이 충돌하면서도 선택진료비 폐지, 2·3인실 상급병실료 건강보험 적용, 상복부초음파 및 뇌·뇌혈관 MRI 급여화 등을 큰 차질 없이 이뤄왔다.
이 과정에서 대한의사협회는 답을 정해놓고 의료계를 정승취급하며 정책을 강요하고 강행한다고 지속적으로 비난했다. 지난 8월에는 의료계를 정책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신뢰를 쌓으며 논의할 의지가 있는지 9월30일까지 밝히라고 공개적으로 최후통첩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27일 의사협회의 요구에 응했다. 그간 의사협회가 요구해온 바를 큰 틀에서 수용했다. 먼저 급진적이라고 지적받아온 보장성 강화를 의학적 필요성에 따라 점진적·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치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계의 의견을 수렴해 수가를 적정수준으로 높이고, 교육상담이나 심층진찰 확대, 의뢰-회송사업 활성화 등 일차의료의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무면허 의료행위 근절과 의료인의 자율규제환경을 조성하자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와 관련 최대집 의사협회장은 28일 “기존의 보장성 강화정책은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대부분의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는 것이 원칙이었다”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호 신뢰를 쌓고 의료계가 제시한 문제에 정부가 공감해 포괄적 합의문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 또한 “당초 계획은 있지만 필수의료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공감하며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시일을 못 박지 않고)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가자는데 동의했다”며 “여러 가지를 의료계와 깊이 있고 논의하며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 “정치적 쇼에 불과한 하나마나한 합의” 혹평도
하지만, 이를 지켜본 시민사회나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번 합의가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하나마나한 합의’라거나 국민의 지지나 동의도 받지 못한 ‘성립할 수 없는 합의’라고 불만어린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당장 환자단체연합 안기종 대표는 “국민적 공감이나 지지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나 동의 없이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합의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행위 자체에 대한 문제를 거론했다.
정책의 속도나 방향을 변화시키는데 국민들은 아직 동의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더구나 국민과 환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일방적 혹은 의료계와 정부 쌍방 간 합의만으로 문재인 케어로 비롯될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상의료운동본부 정형준 집행위원장(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는 형식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요식행위였으며 내용적으로도 달라진 점이 없는 무의미한 합의였다고 혹평했다. 그는 “달라진 게 없다. 세부적인 계획이나 방향에 대한 합의가 있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합의가 없더라도 지각변동을 유도할 정책이 1~2년 내에 갑자기 추진되는 것이 아니기에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으며, 필수의료 중심으로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요구이자 방향이기에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원론적인 합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에서도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의사협회도 보장성 강화에는 찬성한다고 했다”면서 “의미 있는 합의가 되려면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이를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했다. 그런 게 하나도 없다”고 평했다.
심지어 의료계 일각에서도 불평이 쏟아졌다. 의료계의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겠다며 투쟁원칙을 전면에 내세워 구성된 최대집 집행부가 이룬 것이 제대로 없다는 비판부터,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번 합의도 결국 정부가 계획하고 바라는 대로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는데 의료계가 동의한 것과 다름없다”면서 “비급여를 내주며 수가정상화를 얼마나 이룰지 두고봐야겠지만 지금까지 투쟁을 하겠다며 시끄럽게 떠들었던데 반해 이룬 건 하나도 없다”고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새로운 것이 있는 것처럼 형태를 취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다. 그간 협의해왔던 원칙과 방향에서 달라진 점이 없다”고 못 박으며 “정부는 기존 정부 계획대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투쟁으로 막겠다고 했지만,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회원들 앞에서 인정하고, 정책을 추진하고 정착시키는데 의료계의 협조가 필요한 만큼 대화와 논리로 문제를 인식시키고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나 제도를 끌어오겠다는 태도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내용 없는 합의에 다른 생각하는 의료계와 정부
이 같은 불만은 오는 3일 열릴 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최대집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과 함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통한 합의문 파기를 포함한 문재인 케어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번 합의문 도출 또한 사면초가에 몰린 최대집 집행부 입장에서 정부의 협조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 대타결이 있었다는 것을 회원들에게 전하며 내부에 쌓인 불만을 누그러뜨리고자 한 시도라는 분석이다. 그만큼 내용적으로는 새로운 것을 만들 시간적 여유나 논리가 부족했다고 풀이된다.
실제 시민사회나 의료계 관계자들의 분석처럼 합의문을 작성한 두 집단 간에도 정책 추진방향에 대한 생각의 온도차가 컸다. 의사협회와 복지부 모두 큰 틀에서의 방향성에 대한 합의였으며 향후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논의하고 토론하며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만 동의했다.
당장 대통령 임기 내 문재인 케어를 완성하겠다는 정부의 당초 계획에 대한 입장에서부터 두 집단 간 생각이 달랐다. 최대집 의사협회장은 기한에 얽매이지 않고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가 아닌 필수의료 중심의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보장성 강화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를 통해 CT나 MRI, 초음파 등 의학적 필요성은 인정됐지만 건강보험 재정적 한계로 제한됐던 항목부터 급여화를 추진하되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들까지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며 무리해 2022년까지 도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비급여도 유지될 것이라고 봤다.
반면 이기일 국장을 비롯한 복지부의 생각은 좀 달랐다. 이 국장은 의사협회의 생각처럼 대통령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는 것이냐는 질문에 “일단 필수의료 먼저 하자는 것까지만 이야기했다”고 답했다.
이어 “당초 계획은 염두에 두되 임기 내에서 주어진 환경에 맞춰 의료계와 적극적으로 논의해서 진행하겠다”면서 “몇 년도에 뭘 하고 몇 년도에 뭘 하고 그렇게 기한을 두고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공감하며 같이 해나가자고 한 것”이라고 조심스럽지만 당초 목표를 이뤄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다른 복지부 관계자 또한 “아직 임기 만료까지는 4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기대컨대 큰 차질은 없을 것”이라며 “실무협의를 하며 정리를 해봐야겠지만 정부도 비급여를 급여화할 때 치료에 필요한 의학적 비급여를 단계적으로 급여화한다 것이 기본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어떻게 보면 의료계 쪽에서 너무 과도하게 걱정했던 듯하다. 3600개 전부를 급여화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부분부터 실무적으로 조정해나가며 차근차근 해나가자는데 합의한 것”이라며 “서로 동의하고 중요하며 필수적인 것부터 하고, 급여화 필요성에 대해 시각이 다른 것은 지속적으로 논의해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부연했다.
한편,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야당 국회의원은 문재인 케어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뤄지는 현 추진과정에 대해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다만, 그는 “지금의 정책은 국민의 보편적인 경제적 부담을 늘리면서도 체감 보장률은 오히려 떨어뜨리고, 비급여도 없앨 수 없는 방식”이라며 정책목표달성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2022년까지 의학적 비급여의 급여화 등을 통해 보장률 70%를 달성한다는 문재인 케어의 목표를 이루는 것은 의료계의 반대와 무관하게 MRI 급여화, 상급병실료 급여확대나 예비급여 등 회색지대를 만들어 비급여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큰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 “당초 목표설정이나 정책방향이 잘못됐다. 더구나 의료계는 자신들의 수익을 늘리기 위해 정책방향을 지속적으로 왜곡할 것이며 정부는 국민의 실질적인 보장성이 아닌 대통령이 선언적으로 내세운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으로 정책을 협의해나갈 여지가 있다”고 우려하며 국민을 위한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정책추진을 거듭 당부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