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우드 영화나 미드에는 숱한 연쇄살인마가 등장합니다. 도끼나 칼, 전기톱 등으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살인마들이나 어둠 속에 숨어서 형사들과 팽팽한 심리전을 펼치는 지능적인 범죄자도 있죠. 이들은 작중 주인공들에게 심각한 위협을 가하며 주인공이 극복해야 할 존재로 등장합니다. 주인공과 연쇄살인마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웬만한 수사물에는 연쇄살인마가 꼭 한 번씩은 등장합니다.
그러나 간혹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으로 분할 때도 있습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나 오늘 소개할 드라마 ‘덱스터’의 주인공처럼 말입니다. 덱스터라는 캐릭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베스트셀러인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에서 주인공 덱스터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살해당한 현장에 홀로 남겨진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이때의 트라우마로 그는 살인 충동을 갖게 되죠.
이를 눈치 챈 양아버지는 그가 살인의 욕구를 ‘승화’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연쇄살인마를 추적해 처단하는, 그러니까 ‘연쇄살인마를 처리하는 연쇄살인마’가 되도록 말이죠. 덱스터는 양아버지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릅니다. 그렇게 낮에는 경찰 혈흔분석가로, 밤에는 연쇄살인마를 찾아 사냥에 나서는 이중생활을 하게 되죠.
그런데 과연 살인자를 처단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는 연쇄살인마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연쇄살인범(serial killer)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고 연쇄살인범 수사에 프로파일링 기법을 도입한 FBI 심리분석관 로버트 레슬러는 조직적 범죄와 비조직적 범죄 두 가지 유형으로 연쇄살인범들을 구분합니다.
조직적 유형은 대상자 선정부터 범행 방법까지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인내심도 있기 때문에 검거할 때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반면, 비조직적 유형은 심각한 정신질환이 동반된 경우가 많으며, 범행이 충동적이고 범행 방식도 절제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들은 성적인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다고 합니다. 범인은 성적으로 불구인 경우가 많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죠. 어린 시절에는 동물을 죽이는 등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범행을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범행 주기 또한 점차 짧아지는 특성을 보입니다.
덱스터 역시 전형적인 조직적 유형의 연쇄살인마로 분류됩니다. 범죄 대상을 연쇄살인범으로 국한시키는 행동이 얼핏 정의를 이루려는 숭고한 목적에 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살인 충동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죠.
연쇄살인마에게 양심이나 타인에 대한 공감, 연민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조직적 유형의 연쇄살인범은 반사회성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소시오패스(sociopath)나 싸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용어와 혼동돼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공감 능력이나 죄책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을 이용 가능한 대상으로 여깁니다.
한편으로 연쇄살인마는 쾌락을 위해 반복해서 살인을 하는 반사회성 인격장애 환자로 볼 수 있습니다. 죄책감이 없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기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살인을 멈추지 않습니다. 덱스터 역시 하루라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으면 못 견뎌하죠.
드라마 속에서 타인과 정서적 공감을 하지 못하는 덱스터가 사회에 적응코자 감정을 느끼는 척 연기하는 모습은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여동생과 여자친구에게도 별다른 애착을 느끼지 못하지만, 자신이 연쇄살인마란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려 노력합니다.
때문에 덱스터의 모습에서는 현대인의 외로운 자화상이 비쳐지기도 합니다. 그는 살인에 대한 갈망을 이해해줄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죠. 파국이 예정된 만남, 외로움의 본질은 자신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해결은 요원합니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관계를 맺지만, 그 관계의 형성이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덱스터는 그를 정상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가짜 연애를 시작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 가정도 꾸리게 됩니다. 직장일은 바쁘고 결혼 생활과 육아에 지쳐가는 덱스터의 모습에 현대 남성들의 모습을 투영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가정과 개인의 자유가 공존하기 힘들다는 것을 덱스터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덱스터이지만, 그가 본능을 숨기고 사회에 적응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남성들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 원장 eastblue07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