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현상이라는 게 있다. 냄새를 통해 과거의 일을 기억해내는 현상이다. 냄새와 기억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지만, 서로를 불러내고 또한 그럼으로써 각자의 존재를 증명한다. 낭만적이다. 21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그룹 소녀시대 멤버 태연의 단독 콘서트 ‘어퍼스트로피 에스’(`S…)도 그랬다.
태연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조향사와 함께 특별한 향을 만들어 공연장 곳곳에 남겨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어퍼스트로피 에스’ 공연의 분위기와 닮았다고 생각한 향기다. 첫 향은 달콤했고 잔향은 깔끔했다. 태연은 “향기로라도 기억할 수 있는 공연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며 웃었다.
‘어퍼스트로피 에스’는 감각을 콘셉트로 한 공연으로, 태연은 자신의 솔로음반과 소녀시대 노래는 물론, ‘히어 아이 엠’(Here I Am), ‘러브 유 라이크 크레이지’(Love You Like Crazy), ‘두 유 러브 미?’(Do You Love Me?), ‘그래비티’(Gravity) 등 미발표곡도 들려줬다. 지난 20일부터 이틀 동안 1만여 명의 팬들이 공연장에 몰려들었다.
쇼가 주는 쾌감은 대단했다. 두 번째 곡 ‘아이 갓 러브’(I Got Love)를 부를 때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관객들을 매혹하던 태연이 당당한 걸음으로 중앙 무대로 걸어 나올 때, 빨라지는 드럼 연주와 팬들의 함성이 겹쳐지면서 어느 때보다 영화 같은 순간이 만들어졌다. ‘파이어’(Fire) 무대는 또 어떤가. 애처롭게 노래하는 태연을 이동식 무대가 하늘 높이 들어 올렸을 때의 긴장감. 그건 어떤 음악적 장치나 무대 연출보다 가슴 뛰는 것이었다.
태연은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나누는, 보이지 않는 선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줄에 매달린 채 공중에서 퍼포먼스를 하거나 남성 댄서에게 발차기를 날리던 ‘러브 유 라이크 크레이지’ 무대는, 실험적이었지만 아이돌로서도 매력적이었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의 ‘바람 바람 바람’은 아이돌에게 흔히 기대되는 무대였지만, 음악적인 완성도 역시 높았다.
태연이 열었던, 지난 두 번의 콘서트를 기억한다. 2016년 열렸던 ‘버터플라이 키스’(Butterfly Kiss)에서 그는 디바였고, 지난해 열린 ‘페르소나 가면’에선 전사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 태연은 황제 같았다. 공연장 안에서 그는 누구보다 빛났고, 화려했고, 솔직했으며, 행복해 보였다.
오프닝 곡으로 ‘히어 아이 엠’을, 엔딩 곡으로 ‘아이’(I)를 선곡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첫 곡에서 ‘나는 여기 있어’(Here I Am)라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하던 태연은 ‘아이’(I)에서 ‘난 다시 떠올라’라며 자신의 비상을 선언한다. 시각과 청각과 후각뿐만 아니라, 메시지로 기억될 공연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