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설립요건을 갖추지 못한 의료생협(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나 의료법인을 설립해 건강보험 요양급여 1352억원을 부정 수급한 4명이 붙잡혔다. 하지만 사법당국이 영장을 기각하며 부정수급액 환수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29일 사건을 담당한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 조직범죄수사4팀에 따르면 이들은 의료생협을 만들면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병원을 개설할 수 있다는 의료법의 맹점을 파고들어 요양병원이나 의원 등 의료기관 12개를 개설해 운영해왔다.
이 가운데 A(68)씨는 2006년 11월 아내가 운영하던 사무장병원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타인의 인적사항을 도용해 조합원 300명을 허위로 올리고, 출자금 3000만원도 대납하는 등의 방식으로 의료생협을 같은 자리에 설립했다. 이후 의료법인으로 변경해 약 12년 간 요양병원 3곳을 운영하며 요양급여비 1010억원을 편취했다. 이 과정에서 10억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B(41)씨는 지인으로 구성된 형식적인 이사회를 바탕으로 설립한 의료법인 명의로 요양병원을 개설해 9년간 불법으로 운영하며 270억원의 요양급여비용을 부당하게 청구했다. 더구나 B씨는 한국 국적을 포기한 자녀 2명에게 법무팀장과 원무과장 직책을 주고 매달 500만~600만원의 월급을 주는가 하면 법인명의로 9000만원 상당의 외제차량을 이전해주기도 했다.
C(65)씨와 D(63)씨도 유사한 방법으로 의료생협을 설립한 후 요양병원과 의원 6곳을 운영하며 각각 62억원과 20억원의 요양급여비를 타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모두 친인척을 직원으로 허위기재하고는 고액의 급여와 법인 명의의 고급 외제차를 지급했다. 해외여행 경비나 유흥비용 등 사적인 비용도 법인카드로 결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행위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경찰과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금융감독원이 사무장병원을 적폐의 하나로 보고 지역별로 대표적인 의심사례를 경찰에 의뢰해 수가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B씨를 제외한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B씨 또한 검찰 단계에서 1차례 체포영장이 기각된 후에야 신병을 구속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체포영장이 기각돼 구속수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증거인멸이나 재산은닉 등이 용이해졌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화이트칼라범죄의 경우 서민형 범죄에 비해 죄질이 나쁘고 지능적이기에 출석요구를 할 경우 증거인멸이나 재산은닉 등의 우려가 크다. 이에 사전 체포영장을 청구해왔고,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져 구속수사가 이뤄졌다”면서 “검찰과 법원이 달라졌다”고 토로했다.
특히 “A씨의 처나 B씨의 아버지, C씨의 오빠, D씨 등은 모두 사무장병원의 원로 격으로 수십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겨왔고, A씨 등은 이렇게 모은 재산을 바탕으로 부산경찰청장 출신 변호사와 전직 부산지방검찰청 2부장검사 등 전관을 변호사로 선임해 변론에 나서고 있다”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라고 한탄했다.
이와 관련 사무장병원 척결을 기치로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제도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부정 수급한 요양급여비용 환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답답함을 전했다.
구속수사와 증거확보가 빠르게 이뤄져도 환수가 어려운 상황에서 영장이 기각돼 시간이 지연될 경우 지급된 건강보험재정을 찾기가 힘들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 10년간 부당이득금 환수결정대비 징수율은 7.29%다. 2017년 징수율은 4.72%에 불과했다.
이에 건보공단 관계자는 “특사경 제도가 도입된다면 의심스런 상황에서 바로 수사를 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의뢰를 하고, 수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시일이 소요되다보니 그동안 재산 빼돌리는 경우도 있어 조치가 들어갈 때면 환수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검·경의 공조가 잘 이뤄져야 빠르게 환수조치가 가능한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답답함을 전했다.
한편, 부정수급비용이 가장 많다고 알려진 A씨는 전 부산경찰청장과 부산지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등 7명의 변호인단을 꾸리고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그 때문인지 앞서 2차례에 걸쳐 경찰이 요구한 체포영장은 모두 출석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됐다. 3번째 영장실질심사는 내일(30일) 오후 2시로 예정됐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