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로그인] 문제는 ‘게임중독’ 아닌 ‘여가문화’

[게임 로그인] 문제는 ‘게임중독’ 아닌 ‘여가문화’

기사승인 2018-11-01 08:30:00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지는 않았지만 심심찮게 자주 등장한 주제로 ‘게임’이 있다. 산업 진흥에 대한 목소리도 있었지만 문체위, 복지위, 여가위를 가리지 않고 게임을 ‘사회악’으로 치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우려는 대체로 ‘게임중독’ 논란과 확률형 아이템 등 과금 체계의 사행성 문제로 나타났다. 새로운 주제는 아니지만 근래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질병 코드 등재 움직임과 모바일 게임 시장의 부분 유료화 흐름 등에 따라 지속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게임이라는 콘텐츠와 그 소비‧이용 행태 등을 면밀히 구분하지 않은 채 도박, 마약 등과 같은 선상에 두고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의원들의 모습이다. 문제의식은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인식의 틀은 '주방용 세제로 세수를 하는 것'과 같이 정리되지 않았다. 이는 다시 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된다.

복지위 최도자 의원은 “게임 자체는 중독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게임 몰입을 알콜 중독과 비교하고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등 사행 산업 또는 담배 등과 같은 맥락으로 치부했다. 이에 따라 업계가 ‘게임중독예방치유부담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여가위 윤종필 의원은 최근 사회적 충격을 준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언급하며 공격했다. “고등학교 94.2%가 게임을 하고 전체의 2.6%가 게임중독 상황이다”, “게임과 마약의 뇌가 동일하다”며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에 국내 게임중독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화두를 함께 언급함으로써 게임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을 강조한 발언들이다. 설득력을 갖는 부분도 있지만 맹점도 적지 않다.

우선 게임 자체는 문화 콘텐츠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영화, 음악, TV 프로그램부터 도서, 스포츠 등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이 같은 콘텐츠들이 메우고 있다. 짚어야 할 부분은 이 문화 콘텐츠를 이용하는 행태 중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이를 서비스하는 업계의 상품 전략 문제 등이다.

범죄자가 PC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TV 드라마를 즐겨 본다고 그 상호관계 연구 없이 범죄와 관련짓는 것은 ‘스위스는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했다. 스위스는 초콜릿이 유명하다. 그러므로 초콜릿은 노벨상에 도움이 된다’와 같은 우스꽝스런 오류를 내포할 수도 있다.

도서부터 게임까지 이어지는 콘텐츠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도 있다. 활자로만 이뤄진 책을 읽는 것과 그림을 곁들인 만화, 또 소리와 움직이는 영상까지 더한 영화 등을 감상하는 이용 행태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게임은 여기에 이용자가 직접 개입하는 상호작용 요소가 더해진 형태다.

모든 콘텐츠는 그 특성에 따라 다른 매력을 갖지만 시청각, 상호작용까지 더 많은 감각과 기능을 자극하는 콘텐츠일수록 몰입감이 높아지는 것이 보통이다. 일반 영화와 3D‧4D 영화의 경험 차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콘텐츠 변천사와 함께 사회적 문제는 항상 제기돼 왔다. 80~90년대 많은 부모는 TV를 ‘바보상자’라 부르며 책을 읽지 않는 자녀들을 다그쳤고 2010년 이후에는 스마트폰이 사회를 무너뜨린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이제 TV는 보편적 매체가 됐고 스마트폰으로 SNS 이용에 열중하는 고령층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콘텐츠‧기술과 사회의 변화 과정이다.

즉 중독 또는 과몰입 문제는 이용 행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콘텐츠 특성에 따라 바람직한 이용 행태가 구별되는 것이지 해당 콘텐츠 등 대상 자체를 사회악으로 치부하는 것은 경솔하다.

이는 다시 게임이나 영화 등 여가 문화를 이용하는 청소년 등 대상층의 생활환경 등과도 이어진다. 과도한 학업 경쟁 스트레스, 대인관계 경험 부족, 성취감을 느낄 활동의 부재 등으로 인한 문제를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로 해소할 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올바른 교육 부족으로 인한 생활 불균형, 인지부조화 등이 게임을 배출구 삼아 쏟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국감에서는 이를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할 주무부처 상임위인 문체위마저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줬다.

손혜원 의원은 게임 쿠폰을 두고 도박에서의 ‘개평’이라고 표현하거나 슬롯머신 잭팟과 게임 화면을 나란히 띄워두고 비교했으며 해외 도박 포럼 사례를 들어 업계를 질타해 어안이 벙벙하게 했다. 조경태 의원 질의에서는 도박문제관리센터원장,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장과 게임물관리위위원회 위원장, 엔씨소프트 대표를 나란히 세웠다.

이처럼 국감 ‘동네북’이 된 게임 업계는 현재 중국 수출길이 막히고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다시 한 번 ‘규제 바람’이 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게임 진흥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문체위 이동섭 의원이 수차례 언급지만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산자위 김관영 의원이 중소벤처부 국감 질의에서 “우리나라는 특히 게임 업계에 대해서는 지원이 전무한 상태”라고 질타한 것이 같은 내용이지만 이목을 끌었다.

게임 산업의 주무부처는 문체부다. 다른 IT 업계와 달리 게임은 중소기업으로 묶이지 않고 있다. 문체부 장관은 국감에서 게임과 자율규제 등 업계에 대해 설명하는 등 현황을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정작 문체위 국감이 규제의 장이 되자 진흥 기능을 수행하는 부처가 게임을 맡았으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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