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금지명령에도 사람 죽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접근금지명령에도 사람 죽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사승인 2018-11-06 05:00:00

#“그 사람은 접근금지신청까지 했는데도 살해당했어요. 나는 어쩌죠?”

이씨(49·여)는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심신 미약으로 6개월만 살고 나오면 된다.” 전남편이 평소 늘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가정폭력 피해자다. 남편에게 목이 졸리고 폭행당하기를 수십 년. 그는 지난 2012년 이혼했다. 고통은 계속됐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결국 아무 연고 없는 곳으로 도망쳤다. 전남편으로부터 하루에도 수십 통씩 쏟아지는 ‘죽이겠다’는 협박 문자, 씨 명의로 억대 빚을 내겠다는 말에 이씨는 용기를 냈다. 접근금지신청을 신청하기로 한 것.

그러나 이씨에게는 이조차 쉽지 않다. 경찰은 접근금지신청을 하겠다는 이씨를 법원으로, 법원은 신청 양식이 없다는 이유로 법률 구조공단으로, 법률 구조공단은 고소가 필요하다며 그를 다시 경찰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접근금지신청 하나가 이렇게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줄 몰랐다. 하루하루가 무섭다. 내가 죽어야 보호해줄까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는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살해를 막을 수 없었다.

▲ “돈 내고 그 여자 죽이겠다”는 가해자…긴급임시조치 실효성 ‘제로’

‘가정폭력처벌특별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은 피해자를 위해 법원이 내리는 임시조치 재범 위험성이 높고 현장이 긴급한 경우 경찰관이 직권으로 가해자를 격리할 수 있는 긴급임시조치 피해자가 직접 가정법원에 신청하는 피해자 보호 명령을 마련해 두고 있다.

임시조치는 경찰이 담당검사에게 신청 후 검사 청구로 판사가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절차가 복잡해 통상 7~10일 정도 소요된다.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즉각 격리할 수 없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11년 긴급임시조치 제도가 신설됐다. 긴급임시조치는 1호 주거지 격리, 2호 주거지와 보호시설 및 학교 등지에서 100m 이내 접근 금지, 3호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세 가지로 나뉜다. 경찰은 먼저 긴급임시조치를 취한 뒤, 임시조치 절차를 밟는다.

긴급임시조치는 실효성이 미미 하다는 평가다. 어겼을 시 가해자에게 취해지는 제재가 고작 500만원 이하 과태료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기준, 전체 가정폭력범죄 검거건수 중 경찰이 긴급임시조치권을 행사한 경우는 5.9%에 불과했다. 절차상 가해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데 84일이나 걸린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이혼하지 않은 경우에는 과태료를 피해자가 부담하는 황당한 일도 생긴다. 과태료 부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 2015년부터 최근까지 긴급임시조치 명령을 위반해 신고된 133명 가운데 실제 과태료를 부과받은 이는 28명(21.1%)이다. 5명 중 1명꼴이다. 

실무자들도 긴급임시조치 효과가 없다고 토로한다. 지난 3월 <경찰학연구>를 통해 발표된 ‘가정폭력·아동학대에 대한 경찰개입의 한계요인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경찰들은 가해자들이 긴급임시조치를 어겨도 체포되지 않는 걸 알고 겁을 먹지 않거나 “돈 내고 들어가서 그 여자 죽여야겠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고 토로했다. 

▲ 처벌 강하지만 신청 ‘곤란’…피해자 보호 명령제도

피해자 보호 명령제도는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이 직접 법원에 '피해자 보호 명령'을 청구하는 제도다. 형사절차와 별개다. 가해자에게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긴급임시조치와 비슷하다. 처벌은 상이하다. 가해자가 피해자 보호 명령에 위배되는 행위를 할 시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또는 구류에 처해진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여러 이유로 경찰을 부르지 않는다. 지난 2016년 여성가족부의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중 경찰에 신고한 비율은 1.7%에 그쳤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는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41.2%) △집안일이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29.6%) △신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14.8%) 순이었다. 

그러나 피해자 보호 명령 제도 신청 과정이 복잡해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피해자가 진단서, 진술서 등 각종 관련 서류 구비에서부터 재판 참여, 사실 입증까지 모든 과정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해당 제도에 대한 국민 인지도도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7월 논평을 통해 “피해자 보호 명령 제도가 도입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 많은 피해자가 이 제도를 알지 못한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정이 복잡해 피해자들이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피해자 보호 명령 제도는 피해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실질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변화가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 절차 간소화·가해자 처벌 강화 시급…가정폭력특별법 ‘목적’부터 바꿔야

지난 2015년 ‘한국여성의전화’ 통계에 따르면, 2~3일에 한 명꼴로 가정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1명이라도 줄이기 위해 법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절차 간소화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다. 

먼저 임시조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이 있다. 굳이 검사를 거치도록 규정한 것은 피해자가 신속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스페인, 호주, 남아공, 인도, 브라질 등 다른 국가에서도 가정폭력 범죄에 대해 검사를 경유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신청에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 보호 명령제도 역시 절차를 최소화 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법원 담당자, 상담소 등 관련 기관 종사자가 피해자를 돕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또 긴급임시조치를 어길 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해자를 경찰서 또는 구치소에 구금할 수 있는 제재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위반 시 과태료 대신 징역형에 처하는 방안을 담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에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이 꼽은 가해자 처벌 강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일까. 바로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이다. ‘처벌’보다 ‘가정 유지’에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현재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지난 3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해당 법의 주요 목적을 피해자와 가족의 안전 보장에 두고 가해자 형사 처벌 보장과 접근금지 명령 위반 시 체포 의무 정책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유향순 한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가정폭력 사건에 있어서 임시조치와 긴급임시조치는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이를 어겼을 때 가해자가 받는 제재는 과태료 처분에 그친다. 일반 강력범죄는 형법 처리되는 것과 대조된다”며 “제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가해자를) 벌금형 이상 징역으로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정폭력처벌법에 대해 “여성단체들 사이에서 법의 목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파괴된 가정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것’ 이라는 기존 내용을 ‘가족 구성원 안전과 피해자 인권 보장’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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