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4일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연례 행사 ‘블리즈컨 2018’을 통해 중국 넷이즈와 협업한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디아블로 이모탈’을 발표했다.
PC판 ‘디아블로 4’를 기다리던 많은 매체, 게이머들은 분노했고 디아블로 이모탈을 비난했다. ‘블리자드가 모바일 게임이라니’, ‘블리자드가 변했다’, ‘양산형 모바일 게임을 원한 게 아니다’ 등과 같은 반응이 아직도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어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쏟아지는 비난에도 디아블로 이모탈의 흥행 가능성은 적지 않다.
블리즈컨을 찾고 디아블로 신작을 기다리는 이들은 십중팔구 그간 블리자드가 선보여온 PC 패키지 게임 팬이다. 마니아층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비판과 실제 라이트유저(가볍게 즐기는 이용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모바일 게임 시장의 반응은 어긋나기 일쑤다.
블리자드가 MMORPG 장르가 주류로 떠오른 모바일 게임 시장을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이유도 없다. 모바일 비중이 큰 한국과 중국 뿐 아니라 서구 시장에서도 성장하고 있는 이 시장을 놓칠 수 없는 노릇이다.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은 2016년 ‘리니지2 레볼루션’을 시작으로 지난해 ‘리니지M’, 올해 ‘검은사막 모바일’까지 ‘MMORPG판’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들 흥행작을 배출한 넷마블, 엔씨소프트, 펄어비스는 가파른 매출 증가와 사세 확장을 이뤘다.
스마트폰 하드웨어의 발전와 함께 모바일 게임의 그래픽과 콘텐츠 볼륨은 날로 진화했고 다음달부터 내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 ‘트라하’, ‘리니지2M’ 등 대형 MMORPG들이 연이은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런 모바일 게임 시장에 ‘디아블로’라는 IP(지식재산권)는 적잖은 파장을 줄 수 있다.
국내 모바일 흥행작 대부분은 ‘리니지’, ‘검은사막’ 등 PC 원작을 기반으로 성공을 거뒀고 ‘뮤’, ‘라그나로크’ 등도 중국에서 다시 태어나 빛을 봤다. 사실상 ‘IP 파워’가 하나의 흥행 척도가 되는 분위기다.
블리자드의 디아블로는 이들 국산 IP의 영향력을 넘어서는 글로벌 흥행 타이틀이다. 1996년 ‘디아블로’ 1편부터 2000년 후속작 ‘디아블로2’까지 스토리, 아이템‧스킬 시스템, 전투 액션 등 지금까지 이어지는 핵앤슬래시 RPG 공식을 정립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2012년 출시작 ‘디아블로 3’는 전작만큼의 인기는 끌지 못했으나 여전히 블리자드의 대표 RPG다. 그간 게이머들은 꾸준히 디아블로 4에 대한 갈증을 표해왔고 모바일 시장에서는 일부 게임들이 디아블로를 연상시키는 노이즈마케팅으로 이익을 취하기도 했다.
IP 영향력이 지대한 모바일 시장에 글로벌 최대 기대작 중 하나인 디아블로의 정식 진출은 오히려 반가운 소식이다. 블리즈컨 현장에서 시연된 디아블로 이모탈 데모 역시 매우 제한된 콘텐츠만 제공했지만 조작감, 그래픽 등에서 원작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아 기대감을 높였다.
문제는 넷이즈와의 공동 개발이다. ‘왜 블리자드 독자 개발이 아닌가’, ‘주주인 텐센트가 아닌 넷이즈인 이유가 있나’ 등이 의문으로 남았다.
이에 대해 블리자드는 ‘10년 가까이 이어온 파트너십’과 ‘중국 최고의 모바일 RPG를 선보인 개발사’라고 설명했다. 필시 모바일 게임 최대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이해관계를 정리한 결과일 것이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넷이즈가 중국, 블리자드가 글로벌 서비스를 맡는다.
디아블로 개발진은 “PC 팬들도 잊지 않았다”, “역대 가장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며 디아블로 4를 비롯한 자체 개발 타이틀에 대한 희망도 남겨뒀다.
블리자드 팬들은 안심해도 한국 게임 산업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한 가지 아쉬움이 더 남는다. ‘한국 게임사가 맡을 수는 없었을까’라는 부분이다.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은 옛 PC 온라인 게임과 웹툰 등 국산 IP의 치열한 각축장이다. 이 중 일부가 중화권을 비롯한 해외까지 진출하고 가끔은 일본 등 외산 IP 활용과 오리지널 세계관이 도전장을 던지기도 한다.
이 와중에 넷이즈는 디아블로를 손에 넣었다. 최근 중국산 게임의 국내 시장 잠식과 영향력 증가, 중국 판호 문제로 인한 현지 진출 중단 등이 한국 게임계가 당면한 문제로 수차례 지적돼 왔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이제 중국이 거대 시장과 자본을 앞세운 끝에 IP 파워까지 추월하는 전조일 수 있다.
블리자드 측이 실제 한국 게임사와 접촉을 시도했었다는 후문도 있다. 결국 시장 경쟁력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이다. 개발 기술력에 IP 등 사업 아이템까지 모두 주도권을 내주고 나면 한국 게임 업계에는 무엇이 남을지 고민할 때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