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살리고자 의료 멈추겠다는 의사들

의료 살리고자 의료 멈추겠다는 의사들

“대한민국 의사로 살고 싶다”며 총파업 결의… 의료구조의 근본적 개혁 촉구

기사승인 2018-11-11 19:40:31

복통을 호소한 8세 아동에 대한 의사 3명의 오진을 두고 ‘징역’이라는 사법부의 판결이 전국단위 의료기관의 ‘집단휴진’이라는 결과로 돌아올 전망이다. 악화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대표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총파업’ 카드를 꺼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 이하 의협)를 주축으로 의사 1만여명(의협 추산 1만2000명, 경찰추산 6000명)은 11일 서울시청 맞은편 덕수궁 대한문 광장에 모여 오진의 멍에를 씌우고 형사적 책임을 묻는 사법부와 비정상적인 의료체계를 강요하는 정부를 향해 날을 세웠다.

거리집회에 나선 의사들의 손에는 ‘진료의사 부당구속 국민건강 무너진다’, ‘방어적인 진료조장 사법부가 책임져라’, ‘적당진료 강요하는 의료구조 개혁하라’, ‘심평의학 족쇄풀고 최선진료 보장하라’, ‘의료제도 바로세워 국민건강 지켜내자’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렸다.

심지어 의협은 작금의 현실을 총에 총알을 한발만 장전해 돌아가며 스스로를 쏘는 ‘러시안 룰렛’에 비유하며, 사법부가 모든 의사가 사라질 때까지 반복하는 러시안 룰렛판을 만들어 의료현장을 황폐화시켜 종국에는 국민의 생명까지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제3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 앞서 진행된 전국대표자연석회의에서 ‘전국의사 총파업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실행시 시기와 방식의 결정은 의협 집행부에 전권 위임한다’는 결정을 내린 만큼 끊임없이 희생만을 강요하는 현실, 적당한 진료를 강요하는 의료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정부와 국민에게 선포했다.

최 회장은 먼저 일련의 사태를 두고 “의사들은 그동안 매우 열악한 의료환경에서도 국민건강을 책임져야한다는 무거운 사명감 하나로 온갖 희생을 묵묵히 감수해왔다. 그러나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렸다”면서 의사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대변했다.

이어 “이제 굴욕적인 삶을 버리고 당당히 의권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한다”면서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당하면서 살지는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줘야한다. 우리의 정당한 주장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절대 굴하지 말고 전진해나가자”고 지지와 동참을 당부하며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전국에 분포한 지역의사회를 비롯해 지난달 24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형사1심 재판부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확정하고 금고 1년과 1년 6개월을 선고해 법정 구속됐다 최근 보석으로 풀려난 이들이 소속된 대한가정의학회와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들도 동참의 뜻을 표했다.

이경원 응급의학회 섭외이사는 “이제 의사들은 응급실이나 외래에서 한 번이라도 진료한 환자가 며칠이 지나든 사망과 같은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을 해주고 금고형을 받아 법정 구속될 것이며, 이후 행정처분으로 면허정지나 취소가 되고, 인터넷에서는 악성 댓글로 인격살인을 당하는 이중삼중사중으로 처벌받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낙담했다.

이어 “해도 해도 너무하다. 보통의 국민이 누려야할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대한민국 의사는 국민도 아니란 말이냐. 이 나라에서 의사가 무슨 죄를 지었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진료실에서 응급실에서 환자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마음 졸이며 환자만 보던 의사들이 이제 큰 소리로 외쳐야한다”고 떨쳐 일어나 스스로의 권리를 요구해야한다고 성토했다.

박흥준 서울시의사회장은 “의사들은 의료정책 결정과정에서 완전히 제외됐고, 응급진료현장에서 무시당하며, 마땅히 보호받아야할 법체계로부터 외면당했다. 심평의학에 이어 심판의학까지 진료현장을 옥죄고 있다”면서 “공동정법으로 단체구속을 시킨 법원의 판결은 의료 황폐화 선고”라고 혹평했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의사에게만 신의 경지를 요구하며 의사를 잡아넣는 판사나 검사들은 왜 자신들의 직무수행 중 오판에 대해서는 처벌은커녕 직무상 책임도 묻지 않느냐”면서 “공정을 좌우명으로 삼는 판검사의 이중 잣대”라고 금번 수원지법 성남지원의 판결과정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여기에 보건복지부와 정치권에게 열악한 진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반문하며 “안정적 진료환경을 구축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올바른 대책은 의사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아니라 원인분석과 재발방지를 위한 저수가, 노동착취구조의 의료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의협 집행부와 전국시도의사회장단은 대한문 앞에서의 거리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청와대 앞 효자동 치안센터로 자리를 옮겨 준비한 북을 두드리고 철창을 형상화한 무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척박한 의료현실을 개선해 안정적인 의료환경을 국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호소했다.

특히 이들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건강보험제도와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라는 허울의 이면에는 썩어 곪아가는 한국의료의 민낯이 웅크리고 있다.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지만 벼랑 끝 한계로 내몰렸다”면서 의료분쟁특례법 제정과 함께 국민건강에 대한 재정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불합리한 의료규제와 의료제도를 근본부터 뜯어고쳐야한다고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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