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여성과 아동의 인권이 성장하며 가부장적 사회문화를 바꿔야한다며 가부장적 사회를 대표하는 ‘호주제(戶主制)’를 폐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2005년 3월, 민법이 개정되며 호주제 관련조항이 폐지됐고, 2008년 시행됐다.
하지만 시행 후 10년이 지난 지금, 가부장적 요소가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졌냐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4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한국여성정책연구소가 ‘호주제 폐지 10년, 더 평등한 가족의 모색’이란 주제로 개최한 12차 저출산·고령화 포럼에 법의 추가개정과 인식개선 등을 고민해야한다는 주장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제기된 과제는 크게 3가지다. 먼저, ‘혼인 외의 자녀(혼외자)’와 ‘혼인관계에서의 자녀(자)’로 나누고 차별적 낙인효과에 노출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법과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신옥주 한국젠더법학회장(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은 ‘아동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비교법적 고찰’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에 나서며 “헌법 제11조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법과 사회는 자녀를 일반자녀와 혼인외자로 구분하고 정상적이지 못한 아동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베이비박스에 대한 사회적 논의다. 미혼모 등 자녀의 양육이 어렵다는 이유로 친부모가 신분을 밝히지 않고 아동을 위탁하는 ‘베이비박스’가 아동의 생명과 친부모의 사생활을 보호해야한다는 주장에 힘입어 운영되고 있지만,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가 있는 아동의 인격권이 침해된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베이비박스에 아동을 넣는 것은 아동유기행위로 국가가 이를 보장하기 위한 기본권보호의무를 다 하지 못해 헌법상 보장되는 아동의 자기 뿌리를 알 권리가 침해된다”면서 “모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아동의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양육비이행법상 긴급지원제도 개선 등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거론된 개선사항은 자녀의 성(姓)에 대한 결정에 관한 법 개정이다. ‘자녀의 성(性) 결정 및 혼인 외의 출생자 관련 법제 개선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신 교수와 함께 “우리 법에는 부계 중심의 가부장제의 모습들이 여전히 유효하게 존재한다”면서 현행 민법 781조의 조항을 문제 삼았다.
송 연구위원은 “제1항은 여전히 부(父)의 성과 본(本)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할 수 있도록 해 부성우선주의 하에서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경우를 예외적인 상황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라며 ‘성명’이 개인의 신분과 혈통, 가문을 나타내는 포식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출생과 동시에 존엄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동성애 가족, 비혈연 가족, 한부모 가족, 사실혼 가족, 국제결혼 가족 등 가족의 구성이 다양해지고, 인공수정 등 기술의 발달로 인해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해온 문화가 완화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성을 강요하거나 형제간의 성이 동일해야한다는 등의 인식은 평등원칙과 자기 주체성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개정될 필요가 있다는 설명도 더했다.
이와 관련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우리 사회의 가족관계가 한층 다원화되며 새로운 과제도 등장했다”면서 “이제 더 평등한 가족을 향해 양육자가 혼인을 했는지, 성별이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태어난 아동이 어떤 차별도 받지 않는 포용적 가족문화가 만들어져야할 것”이라고 민법 781조 개정 등 개선에 힘을 더하겠다고 화답했다.
한편, 장윤숙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은 “호주제 폐지 후 개선에 대한 주제로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아이를 더 낳자는 것과 함께 저출산정책에서 낳은 아이를 어떻게 귀하고 잘 키울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면서 “조만간 발표될 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 재구조화 내용에도 이 같은 문제를 담겨질 것”이라고 저출산 대책과도 맞닿아 있음을 부연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