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에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대법원은 의혹에 연루된 현직 판사 13명에 대한 징계 결정을 또다시 미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정황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5일 법원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2015년 10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한일청구권 협정 관련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 내부 기밀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건넨 정황을 포착했다.
법원행정처는 당시 일본 전범기업에 배상책임이 없다는 쪽으로 기존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의도를 갖고, 김앤장과 사건 처리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차장은 지난 2015년 9월 당시 헌재에 파견돼 있던 최모 부장판사에게 “헌법소원 사건을 자세히 파악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이메일 등으로 헌재 연구관 보고서 등을 10여 차례 건네받고 김앤장에 전달한 것이 밝혀졌다.
검찰은 사법부가 소송 일방 당사자인 김앤장에 재판 방향을 알려주는 수준을 넘어 불법 수집한 다른 기관 기밀까지 넘겨줄 만큼 심각하게 유착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지난 3일에는 검찰이 압수수색 등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이 김앤장 소속 한 모 변호사와 대법원장 집무실 등에서 3차례 이상 독대한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이 두 사람이 재판을 전원합의체로 돌려 지연시키고 외교부에 의견서를 내도록 하는 방식 등을 상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치권까지 나섰다. 정의당은 4일 오전 비공개 의원총회를 갖고 탄핵 법관 명단 15명을 선정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인 권순일 대법관을 포함, 차관급 부장판사 4명이 명단에 포함됐다. 정의당이 발표한 탄핵 법관 15인은 대법원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자체 징계 대상 13명에 권 대법관과 임성근 부장판사가 추가된 것이다.
권 대법관은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재판거래와 국정원 댓글 사건 개입 의혹을 받는다. 임 부장판사는 쌍용차 대한문 집회와 프로야구 선수들 원정도박 재판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법농단 의혹 연루 판사들에 대한 징계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지난 3일 재판거래 연루 의혹 법관 13명에 대해 징계심의를 진행한 결과, 이달 중순 다시 한번 심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대법원은 이들을 지난 6월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했으나 두 차례 징계 심의를 진행하고도 결론을 내지 않았다. 이후 석 달 이상 논의를 멈췄다가 지난 3일 세 번째 심의기일을 열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