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죽이려한 환자, 치료해야하는 현실… 괜찮나

자신 죽이려한 환자, 치료해야하는 현실… 괜찮나

기사승인 2018-12-07 10:08:34

#1. 하루는 지역 유일의 응급실에 환자 보호자 A씨가 칼을 휘둘렀다. 진료비가 많이 나왔다는 일종의 분풀이였다. 다행이 다친 사람은 없었고, A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검거됐다. 가슴을 쓸어내렸던 응급의학과장 B씨는 며칠 후 화들짝 놀랐다. A씨가 술에 취한 채 응급실에 실려 온 것. 이 상황에서 B씨는 A씨를 진료해야 할까?

#2. 4~5세 정도로 보이는 아이를 들쳐 업고 어머니 C씨가 권역응급센터에 들어섰다. 이어 응급의학과 전문의 D씨에게 감기약 처방을 요구했다. D씨는 단순 감기라는 판단에서 약 처방만으로도 10만원의 응급실 진료비가 나오는 만큼 야간진료를 하는 주변 의료기관으로 갈 것을 권했다. C씨는 아이를 다시 업고 센터를 나섰다. 이후 D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응급의학과장 B씨와 전문의 D씨에겐 이후 기분 나쁜 일들이 벌어졌다. B씨는 폭언과 폭행에 노출된 위험상황에서 A씨가 난동을 부리지 않길 바라며 응급실에 그를 눕혀야했다. D씨는 해당지역 보건소장의 전화를 받고 ‘진료거부’ 민원에 대한 사유서를 작성해야했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과 ‘의료법’에 따라 환자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 제15조에는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라며 진료거부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더구나 응급의료법 제6조에는 응급의료종사자는 응급환자를 항상 진료할 수 있도록 업무에 성실히 종사해야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더구나 6조 2항에서 응급의료종사자는 업무 중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하여야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고 못 박고,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처벌조항도 부과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6일 ‘최선의 진료를 위한 진료제도 개선방안’이라는 주제 아래 의사의 진료거부권 문제를 핵심사안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현 시점에서 진료거부를 금지하는 조항이 오히려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조항으로 악용되고 있으며 의사의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토론회에 참석한 임상의사나 의학자, 법조계에 종사하는 의사들은 임상현장에서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환자가 의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의사도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진료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정당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설득논리를 개발해야할 것이라고 봤다.

토론자로 자리한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섭외이사(서울백병원 응급의학과장)는 “응급환자를 거부하지 못한다지만, 현행법에 따라 응급과 비응급을 나누면 응급이 95%”라며 “손에 1㎝만 찢어져도, 타박상도 외상으로 분류돼 응급실에 오면 응급환자이며, 배가 아프거나 술에 취해 찾아와도 응급환자다. 이렇다보니 응급실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어떤 의료기관 응급실도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어제 폭언과 폭행,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한 환자를 다음날 진료하고 처치해야한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소비자가 판매자와 시비가 붙어 분쟁이 발생하면 그 사람을 계속 상대해야하느냐.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의료는 법으로 해야한다고 강제한다”면서 부당함을 호소했다.

마약류 상습투여자가 거짓 진단서를 가지고 이곳저곳 병원을 돌아다니며 마약성 진통제를 요구할 경우에도 의사는 이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느 누군가는 진료를 거부해야하지만 악성민원으로 돌변할 개연성이 높고 행정적, 법적 책임을 져야할 부담도 있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일련의 사연에 대해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외국에서는 사회보호를 위해 진료거부권을 주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는 반면 우리는 이익집단의 자기보호를 위한 요구로 해석된다”면서 “환자를 고르고 나쁜 진료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진료환경을 만들고, 의사의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해야한다는, 민주주의적 원칙에서 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더해 김기영 고려대학교 좋은의사연구소 연구교수는 “독일과 비교해 환자의 비합리적 요구사례가 굉장히 많다. 환자와 의사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진료거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가 낮아 손해를 보고, 의료과오로 형사처벌을 받아야하는 한다”며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면책권’을 보장해야한다고 말했다.

이혁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도 유사한 주장을 했다. 이 보험이사는 “현재 의사는 100원짜리 진료를 하며 65원을 받아 손해를 보고 있다.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100명의 환자를 봐야하고, 최근에는 형사처벌까지 받고 있다. 바보짓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현실이 내시경 수만 건을 한 의사가 처벌이 두려워 손을 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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