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원에서 가장 폐쇄적이라는 수술실 내부공개를 두고 의료계 안팎이 시끄럽다. 의사들은 의료행위가 위축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수술실 CCTV 설치만은 안 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들은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겠다며 맞서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0월, 경기도가 경기도의료원 산하 안성병원에 수술실 CCTV를 설치하고 환자의 동의를 얻어 수술실 내부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살필 수 있는 시범사업을 시작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의료계는 무엇을 우려하고, 민간으로의 확대 가능성은 없는지 가늠해봤다.
◇ ‘가부(可否)’ 결단 촉구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실 수술실 CCTV 설치 요구는 계속돼왔다.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환자는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는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환자동의도 받지 않고 집도의가 바뀌는 일명 ‘유령수술’이나 의료기기 영업사원 등 무자격자가 수술을 하는 ‘대리수술’와 같은 위법행위가 알려지며 수술 당시 상황을 알고 싶다는 요구는 높아졌다.
심지어 수술실에서 생일파티를 하거나 환자를 희롱하는 등 부적절한 행동부터 의사가 환자의 의식이 없는 틈을 타 성폭행까지 자행했던 사실이 속속 밝혀지며 환자와 보호자 등 피해관계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공포가 확산됐다. 의료진과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셈이다.
문제는 의료기관의 93% 가량이 사적 영역인데다 의사를 상대로 의혹을 제기하고 문제를 스스로 밝히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도화선을 당겼다. 지난 9월 16일 자신의 사회연결망서비스(SNS)을 통해 10월 1일부터 연말까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수술실에 CCTV를 시범운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지사는 “수술실이 철저히 외부와 차단돼있고, 마취 등으로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이 이뤄져 인권 침해적 사건이 발생해도 환자가 인지하기 어려운데다, 사실을 밝혀내기는 더욱 힘들어 답답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내년부터 산하 6개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운영하겠다고 덧붙였다.
다음날인 16일 경기도는 이 지사의 발언을 공식화했다. 아울러 “주취자 폭력이나 인권침해, 의료사고 우려로 대부분 병원은 응급실에 CCTV를 설치했지만, 수술실의 경우 의료계 반대로 병원 자율에 맡겨져 있다. 19대 국회에서도 환자 동의하에 CCTV 촬영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의료계 반대로 폐기된 바 있다”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임을 시사했다.
◇ 경기도민 10명 중 9명이 설치·운영에 ‘찬성’
도는 지난 10월 2일에는 도정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하며 결단을 내린 배경과 당위성을 설파하고 나섰다. 9월 27일과 28일 양일간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표준오차 95%, 오차범위 ±3.1%p), 응답자의 91%가 수술실 CCTV 설치 및 운영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실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이들의 73%가 마취수술 받을 경우 의료사고나 환자 성희롱, 대리수술 등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그 때문인지 응답자 전체의 93%는 수술실 CCTV가 의료사고 분쟁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고, 촬영에 동의하겠다는 이들도 87%에 이르렀다.
이 외에도 의료사고 발생 시 원인규명과 분쟁해소를 기대한다는 응답이 44%, 의료사고 방지를 위한 경각심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25%가 답했다. 민간병원으로의 확대필요성에 대한 질문에도 51%가 ‘매우 그렇다’, 36%가 ‘대체로 그렇다’고 말해 87%가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만, 우려하는 부분도 있었다. 응답자의 42%가 ‘관리소홀에 따른 수술영상 유출 및 개인정보 침해’를 가장 우려했으며, 25%가 ‘의사의 소극적 의료행위’를, 12%가 ‘불필요한 소송 및 의료분쟁 가능성’, 8%가 ‘의료진의 사생활 침해’, 7%가 ‘의료인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 인식 발생’이라고 꼽았다.
이와 관련 경기도는 정보보호 관리책임자를 선임해 환자의 개인정보를 최우선으로 보호하며 환자가 동의할 경우에 한해 선택적으로 수술실 내 CCTV를 통해 수술 장면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전하며 본격적인 의료인 ‘감시’ 혹은 환자 ‘보호’를 위한 CCTV 촬영에 돌입했다.
◇ 의료계, “‘환자 권리’ 헤칠 무자비한 감시장치”
본격적인 수술실 CCTV 운영이 이뤄지자 의료계는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수술실 CCTV 설치·운영은 선진시민의식에 반(反)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감시와 감독으로 의사와 환자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불신을 조장하는 일이자 의료행위를 위축시켜 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여기에 의사 개개인이 행하는 의료행위 자체가 고도의 지적 재산에 해당하는 만큼 이를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며, 의료행위가 가진 근본적인 위험성과 돌발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결정이자 환자의 내밀한 신체정보까지 노출될 우려가 있는 만큼 디지털 정보로 남겨져 유출될 경우 환자에게 씻지 못할 피해를 줄 수도 있어 절대 허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의사협회는 경기도의 수술실 CCTV 설치결정에 대해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사회적 현실과 반대로 환자의 인권문제, 의료인 직업수행의 자유 침해 문제 등 논란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의료계의 의견도 배제한 채 강행하는 것은 문제”라며 유감의 뜻을 표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또한 별도로 “의료계 내에서도 아직 중론이 모이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술실 CCTV를 설치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의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유지해야겠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윤리수준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체계가 마련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선진국은 물론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도 독립적 면허관리기구를 운영해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담보하고 있었다”면서 “의사의 비양심적,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대리수술 등이 문제라면 면허관리와 함께 수술실 출입을 확인할 수 있는 수술실 앞 CCTV나 출입관리체계를 갖추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수술실은 지금 ‘촬영 중’
하지만 경기도는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범사업을 강행했다. 안성병원에서 10월 1일부터 지난 6일까지 외과와 정형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에서 이뤄진 총 수술건수 329건 중 CCTV로 촬영된 수술은 총 188건으로 57%의 환자가 촬영에 동의했다.
전공별로 나누면 정형외과가 167건 중 71%인 118건이 동의를 받아 촬영됐다. 뒤를 이어 산부인과가 3건 중 2건으로 67%, 이비인후과가 10건 중 5건으로 50%, 비뇨기과가 46건 중 20건으로 43%, 외과가 103건 중 42건으로 42%가 환자 동의를 얻어 영상자료로 남겨졌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안성병원 관계자는 “시범사업 초기에는 환자들이 CCTV 촬영에 대한 인식이 낮아 동의건수도 이보다 낮았다”면서 “민감한 신체부위가 드러나는 비뇨기과나 외과에서의 동의율이 낮은 편이지만 대체로 인식이 높아지며 동의율도 올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들 또한 처음에는 꺼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크게 동요하거나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아직도 불편해 하기는 하지만 공공의료원이기에 결정된 사항을 뒤집기도 어렵고, 환자들이 안심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면에서 점차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아직 난해하거나 힘든 수술을 해야 할 경우 환자들이 CCTV 돌려보면 된다며 동의하는 모습을 보일 땐 부담을 가지고 자존심도 상한다는 말을 한다. 위축되거나 불쾌해하는 이들도 있다”면서도 “CCTV가 사람의 출입정도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기에 애로사항은 있지만 도의 정책이고 공공의료원이기도해 받아들이는 정도”라고 답했다.
이어 “환자가 동의를 하는지를 의사가 진료 중 묻고, 동의를 할 경우 수술실에서 CCTV를 담당하는 관리자가 전원을 켜 촬영을 시작하게 된다. 또한,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송출되는 영상도 중앙통제실에서 볼 수 없도록 막아놓고 환자가 확인을 요청하는 경우에만 열 수 있도록 했다”며 “환자의 권리와 함께 의사의 진료권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 의사들 꺼려도 수술실 CCTV는 늘어난다?
실제 안성병원 소속 한 외과계 전문의도 “시범사업 초기에는 의사들 사이에서 수술을 꺼리기도 했다. 지금도 불편한 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지났고 도에서 정해 지침이 내려온 만큼 적응해가고 있다”며 “환자들이 싫어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 때문인지 경기도는 당초 계획대로 2019년도에는 같은 부지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CCTV 설치 예산을 건축비에 포함시켜 이전하는 이천병원을 제외하고, 수원과 의정부, 파주, 포천에 총 13대의 수술실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예산 또한 4400만원을 배정했다. 게다가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정보 반출시 이를 관리하고 차단할 수 있는 별도의 보안솔루션을 구축하기 위한 비용 4000만원도 책정해 경기도의회의 인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안성병원에서 수술실 CCTV 운영 중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동의건수가 올라가고 있는 등 큰 잡음 없이 순탄하게 시범사업이 이뤄지고 있어 다른 병원으로의 확대를 계획대로 추진하게 됐다”며 “예산에 대해서도 삭감 등 문제제기가 크게 없어 그대로 예산이 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경기도의 확대추진계획을 전해들은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환자와의 신뢰나 사회적 분위기 상 CCTV를 설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게 옳은 방향인지는 모르겠다”며 “분명 CCTV를 설치하면 의료사고에 대한 증거자료로 사용될 것이고 의사들은 의식할 수밖에 없어 위험한 수술을 꺼리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다만, 사회적 요구나 여론의 방향으로 판단할 때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히며 면허관리기구를 통한 자율감시와 신뢰회복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점들을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기에 확대기조가 여타 공공의료기관이나 민간영역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최근 “환자의 동의하에 촬영이 가능하도록 수술실 CCTV 자율설치를 권장해 나갈 계획”이라며 “의료계와 환자단체, 전문가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기도도 “환자와 의사 간 불신의 벽을 허물고 신뢰를 바탕으로 보다 안전한 의료환경을 구축하도록 시범운영 결과를 공유하고 적극 협력하겠다”며 호응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