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위기...국가부도의 날·빅쇼트

영화로 보는 경제위기...국가부도의 날·빅쇼트

기사승인 2018-12-21 03:00:00

최근 상영되고 있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는 것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된 것은 외환 위기 이전 안정고용 구조였던 국내 기업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본격화했기 때문입니다. 즉 IMF 체제를 거치면서 국가 경제 구조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고, 이는 곧 우리 실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어서입니다. 적자생존이라는 구조가 피부로 와닿은 것이 이 때부터입니다. 

해외에서도 경제위기와 관련된 영화가 개봉된 바 있습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를 그린 ‘빅쇼트’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크리스챤 베일이 주연으로 나오고 브래드 피트가 조연으로 등장한 작품으로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어떻게 촉발됐는지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어려운 경제용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다소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관객이 좀 더 쉽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빅쇼트는 영화 줄거리를 드라이하게 풀어내는 반면 국가부도의 날은 다소 관객에게 감정이입을 시도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 국가부도의 날, 외환위기 원인 일차원적인 분석 벗어나야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 일주일을 긴박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배우 김혜수 씨가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으로 분해 경제 위기를 예견하고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제관료들의 탐욕, 견해 차 등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하죠. 

아쉬운 점은 외환위기 발생 원인에 대해 다소 일차원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이죠. 영화에서는 단순히 ‘기득권층과 재벌의 무능과 부패’ 등을 원인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는 보다 다각적인 요인들이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영화에서는 당시 정부 경제관료에 대해 ‘악의 축’으로 묘사했으나, 실제 김영삼정부는 마지막까지 IMF구제금융을 받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우선 외환위기의 원인은 재벌의 과잉투자에 따른 부실이라는 내부론적인 접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당시 기아자동차와 진로, 한보, 대우 등 천문학적인 부채를 갖고 있었고 과잉투자도 많았습니다. 당시 재벌의 부채 비율은 500%를 넘었습니다.

보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방아쇠를 당긴 것은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이어진 ‘아시아금융위기’였습니다.  

1997년 조지 소로스가 운용하는 ‘퀀텀펀드’를 필두로 수백 개의 핫머니들이 아시아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태국 바트화를 융단폭격했습니다. 태국 바트화가 위기에 봉착하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한국, 홍콩까지 위기가 연쇄적으로 번졌지요. 당시 외국금융기관은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대외지불능력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지면서 1997년 하반기부터 대출회수가 본격화됐습니다. 이후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외채만기연장률이 급속히 하락하게 된 셈이죠,

당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아시아 금융위기 원인을 소로스 등 투기자본을 그 장본인으로 지목하면서 “이들 유태계 투기 자본이 세계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실제 조지 소로스는 이후 자신의 저서 ‘세계자본주의 위기’에서 태국 바트화 공격에 대한 사실을 시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위기에 처한 김영삼 정부는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소진했고, 같은 해 12월18일에는 39억달러까지 급감합니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외환을 갚기 위해 일본 정부에게 융자를 부탁하지만 거부당합니다. 당시 이교관 기자(전 시사저널) 쓴 ‘누가 한국경제를 파탄으로 몰았는가’라는 저서에서 클린턴 행정부는 일본 정부에게 ‘한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지 말라’는 문서를 보낸 것이 드러났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해외 사모펀드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구조조정 중인 한국 기업들의 자산을 헐값에 인수했다가 나중에 되팔아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결국 한국 정부는 국부 유출을 막고자 2004년 말 법률을 개정해서 국내에서도 사모펀드 설립을 허용하게 됩니다.

또한 부동산 시장이 빗장이 열리게 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부실 위기에 놓인 건설사를 활성화하기 위해 부동산 규제를 풀게 됩니다. 분양권 재당첨 금지 기간 단축, 청약 자격 제한 완화, 분양가 자율화, 양도세 한시 면제, 취등록세 감면, 분양권 전매 허용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합니다. 이는 2001년 저금리 기조가 본격화하면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게 됩니다.

강남 고가 주상복합의 상징 중 하나인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지난 1999년 첫 분양 당시엔 3.3㎡당 9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미분양이 크게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규제 완화 이후 투기는 보다 활성화 됐고, 현재 타워팰리스 가격은 15억원이 넘습니다. 


◇ 빅쇼트…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복기, 책임지는 이들은 없었다

이 영화는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다룬 마이클 루이스의 2010년 논픽션 ‘빅 숏: 패닉 이후, 시장의 승리자들은 무엇을 보는가’를 원작으로 합니다.

빅쇼트는 경제용어로 가격이 하락하는 쪽에 집중 투자를 하는 전략입니다. 일종의 역(逆)투자(인버스 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혹은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부동산금융투자에 대한 기관과 투자은행들의 낙관적인 시각에 일침을 가합니다. 일본이 80년 대 전무후무한 호황을 맞이하다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추락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죠.

이 영화의 주인공인 캐피탈회사 대표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는 2005년부터 세계 경제 위기가 올 것을 미리 감지하고 부채담보부증권(CDO)를 골드만삭스에 신용부도스와프(CDS)를 맺자고 제안합니다. 

CDO는 ‘부채담보부증권’이라고 부르는 파생상품입니다. 주인공은 이 상품이 폭락하거나 부도가 날 것으로 전망하고 대형투자은행과 한판 내기를 하게 됩니다. CDO라는 증권이 완전히 폭락하면, 그 액수만큼의 보험금을 지급 받는 형식의 계약을 맺게 됩니다. 다만 CDO가 부도나기 전에는 CDS 매수자가 매달 혹은 분기별로 보험료를 지급해야 하죠.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당시 부동산 경기 호황과 주택담보 대출 상품 안정성을 신뢰했기에 비웃듯이 흔쾌히 승낙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애널리스트와 전문가들의 예측은 벗어났고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세계금융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핵심적인 소재는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입니다. 이 가운데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주택담보대)는 신용도가 낮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담보대출입니다. 신용등급이 낮은 대상에게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 줌으로써 은행과 기업들은 엄청나게 덩치를 불립니다. 하지만 점점 주택담보를 갚지 못한 개인들이 늘어나면서 은행도 함께 도산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 여파는 국내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라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국내 은행들도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기 때문이죠. 지난 2007년 말 기준 은행권의 손실 규모는 4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은행, 농협, 외환, 신한은행이 당시 천문학적인 손실을 냈습니다. 특히 우리은행이 투자한 4억9200만 달러(약4690억원)의 약 80%가 손실로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사태(금융위기)가 발생했음에도 누구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았죠. 미국의 정부 관료들이나 투자은행의 고위직들, 신용평가사들 중에서는 일부는 사임했지만 대다수 여전히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증권거래위원회 개혁, 파생상품 규제 등과 같은 문제도 이들의 로비에 의해서 무산됐습니다. 당시 미국 정치권은 경제 불황을 이민자 탓으로 돌리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위기가 오더라도 타격은 서민들에게만 오는 셈이지요.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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