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급한 일이어도 충분한 고민과,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속담이다.
지난해 12월 20일 첫 선을 보인 제로페이 서비스가 난항을 겪고 있다. 시범사업 기간 모니터링을 실시, 보완을 거쳐 올 3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방침이지만 보완은커녕 예고됐던 문제점마저도 해결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가장 큰 문제는 실효성이다. 시범서비스 당시 기준 제로페이를 사용 가능한 곳은 3만여개로 서울시 전체 업체 66만개 중 5% 수준에 불과하다.
소비자입장에서는 제로페이 매장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실질적인 사용을 막고 있다. 업무협약을 맞은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차치하더라도, 일선 자영업자 점포의 경우 ‘알고 찾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나다니다가 제로페이 가능 표식이 붙어있는 매장을 확인한 뒤에야 이용이 가능하며, 사전에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등은 전무하다. 가장 중요한 편의성과 범용성이 아직 부족한 것이다.
기존 신용카드 사용자들을 제로페이로 끌어들이기 위한 혜택도 아쉽다는 평이 많다. 서울시가 47만원의 환급 혜택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 조건을 채우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가 내세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연봉 5000만원 근로자가 한 해 급여의 절반인 2500만원을 제로페이로 사용해야한다. 총 급여가 3000만원인 근로소득자가 제로페이로 절반인 1500만원을 사용했을 경우는 28만원을 환급받게 된다.
2017년 근로소득자 평균임금인 3519만원과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사용액인 1900만원을 기준으로 계산해본다면, 평균 수준의 근로소득자가 ‘모든 지출’을 제로페이로 사용할 경우 연간 33만원을 추가 환급받게 된다. 다만 할부, 포인트적립, 기타 혜택을 모두 포기해야한다.
카드사들의 통합 QR페이 시행도 악재다. 신한·롯데·BC카드는 이날부터 카드사 공통 간편 결제 서비스인 QR페이 서비스를 개시한다. QR페이 서비스는 소비자가 신용카드 없이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가맹점의 QR코드를 읽으면 곧바로 결제가 진행된다.
카드사와 가맹점간의 결제 과정을 간소화한 것일 뿐 근본적인 방식이 바뀐 것이 아닌 만큼 제로페이처럼 극단적인 수수료 감면은 어렵다. 다만 기존 할부 결제, 신용·체크카드 할인, 포인트 적립 등 혜택을 그대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관련업계에서는 통합 QR페이를 통해 수수료를 기존 대비 0.2%가량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충분히 환영할만 하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높은 환급혜택을 원한다면 제로페이를, 기존의 편리함을 누리고 싶다면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양쪽의 장점을 절충하기 원한다면 통합 QR앱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일선 자영업자 입장은 다르다. 기존 신용카드 외에 삼성페이, 카카오페이를 비롯해 제로페이, 통합QR앱 등 결제수단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결제수단을 일원화하거나 강제할 수 없는 만큼 해당 앱이나 수단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뤄져야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충분한 사전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아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가 사용에 애로사항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판매자 계좌가 사장에만 연결돼있다보니 아르바이트생은 결제 내역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물론 아직 제로페이는 시범사업중이고,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이 시범사용기간 중에 제로페이를 사용했다가 불편함을 겪어 기존의 결제방식으로 돌아간 소비자들은 사실상 ‘끝’이다. 이런 경우 시스템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다시 제로페이를 사용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박원순 시장은 제로페이 실효성 문제에 대해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첫 술을 뜨기 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문제점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했으면 시장 안착이 더욱 쉬웠으리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