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에 사는 A씨는 최근 새벽 1시경 30개월 된 아픈 아이를 업고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응급실에 소아과 의사가 없어 진료가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A씨는 “인구 40만 도시에 아기를 돌볼 의사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토로했다.
강원지역에 사는 B씨도 최근 ‘의료사각지대’를 절감했다. 8개월짜리 아이가 인후염과 폐렴이 동반된 심한 독감에 걸려 응급상황을 겪었지만 주변에 마땅한 소아 응급의료기관이 없어 2시간이 걸리는 다른 지역 병원을 찾아가야 했다는 사연이다.
지난 2016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응급실을 전전하다 사망한 두 살배기 민건이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아픈 아이들을 위한 응급의료기관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지역 맘카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소아응급실을 확충해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의료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우려가 크다.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서 아이들이 골든타임을 놓칠까 하는 걱정이다.
실제로 국내 소아 대상 응급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정상운영 중인 소아전문응급센터는 전국에 3곳에 불과하고, 모두 수도권에 밀집돼 있었다.
소아전문응급센터는 성인응급실과 별도로 분리된 소아응급실에 소아를 위한 연령별 의료장비와 시설을 갖추고, 소아과 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 이상을 포함한 소아응급환자 전담의사 4명 이상이 상주하는 등 일련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또 해당 의료기관은 소아응급실과 별도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5명 이상 확보해야 한다.
앞서 2016년 정부는 소아 응급의료시스템 확충을 위해 이러한 소아전문응급센터 9곳을 지정한 데 이어 최근 4곳을 추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보건당국의 지정기준을 충족한 3곳을 제외한 대부분은 소아전문응급센터로 지정된 지 2년이 넘도록 센터 설립을 미루고 있었다. 이들 의료기관들은 소아응급의료분야 인력난과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최병민 고려대안산병원장(소아청소년과)은 “안산병원은 지난 2016년 소아전문응급센터로 지정됐지만 실질적으로 운영이 어려워 센터 설립을 못하고 있었다”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력이다. 현재 센터설립을 준비하고 있는데 24시간 상주할 수 있도록 소아응급의료 전담 전문의를 추가 고용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운영할수록 연 1~2억 이상 적자가 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최 원장은 “최근 저출산 현상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지 않고, 여기에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도 감소하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 성인에 비해 어린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뒤처지는 것 같다”며 “공공의료의 차원에서 소아응급의료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3곳의 사정도 그리 좋지는 못했다. 이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환자 쏠림 현상으로 업무가 과중한 상황이다.
소아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이 부족하다보니 환자 쏠림이 심하고, 이로 인해 중증환아를 위한 인프라가 경증 환아에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소아환자 특성상 경증환자가 많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전반적인 응급의료기관의 소아응급환자 진료 역량을 강화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상 기관의 인증평가에 ‘소아 응급진료 준비수준’항목을 반영하고 교육, 장비 등을 지원하는 방향이다.
소아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기본 장비 지원과 응급의료진과 전공의들이 일정 수준의 소아응급환자 진료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노현 대한소아응급의학회 기획이사(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는 “전문센터라는 이름이 자칫 환자 과밀화만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소아응급의료를 위한 제한된 자원이 효과적으로 활용되려면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가 중증환자를 최종 치료하는 곳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 이사는 “현재 부족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설립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소아응급환자를 볼 수 있는 일반응급실 40곳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며 “소아응급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인력 또는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돈이 되지 않거나 교육이 부족해 소아응급환자를 기피하는 의료기관이 적지 않다. 이미 있는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강화하듯 이들 의료기관이 소아환자를 열심히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