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임세원 교수의 사망 사건과 관련한 후속 대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사법입원제’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국가 책임 하에 환자의 치료권과 인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학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한 ‘사법입원제’도입을 촉구했다.
사법입원제도는 의사가 순수하게 의학적 판단만으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하면 사법기관이 환자의 상태, 가정환경 등을 고려해 입원 적절성을 평가하는 제도다.
학회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해 “단순히 입원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것은 인권보장의 대책도 되지 못하면서 치료권을 심각히 저하하고, 그 결과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6월 경찰관 사망사건, 그리고 故 임세원 교수 사망과 같은 범죄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며 지적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법입원제를 내세웠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지금까지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은 1차적으로 가족(보호자)에게, 2차적으로 병원의료진에게 돌아갔다. 환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인 보호자와 의료진이 법적인 장치없이 입원책임을 고스란히 지다보니 유산싸움로 인한 강제입원, 그리고 강제입원 트라우마로 인한 환자의 적대감이 의료진과 가족에 향하는 등 트러블이 발생하고 있다”며 정신의료 현장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권 이사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은 사법적인 결정이 들어가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며 “의사나 보호자 개개인이 아닌 환자 인권을 보호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이고 의료진을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합당한 제도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정신질환자 가족들 사이에서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조차 어렵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최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이같은 내용의 청원을 올린 청원자 A씨는 “20년째 조현병을 앓고 있는 동생이 집에서 70대 부모를 폭행하고, 난동을 부려 고통스럽다”며, “신변의 위협을 느껴 경찰에 신고해도 법으로 인해 병원 후송 등을 도와줄 수 없다면서 돌아간다”고 토로했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치료받지 못한 채 가정에 방치돼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를 숨지게 한 가해자 박모씨의 가족도 박씨의 폭력성향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고 떨어져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의료계에 따르면,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자타해 위협이 확실한 때에만 병원 이송에 협조하고, 119구급대는 정신질환자의 이송이 의무사항이 아니라며 이송을 거부하기 일쑤다. 또 지역사회가 심각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심사를 청구하는 외래치료명령제도가 있지만 강제성이 없고, 지원도 이뤄지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렇게 급성치료시기를 놓친 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진다는 점이다.
이해국 학회 중독특임이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를 안전하게 의료기관에 모시고 와 달라는 것이다. 임 교수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망상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주변의 징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며 “징후가 발견됐을 때 환자를 치료현장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의 사법체계가 완비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진 학회 총무이사도 “사법체계 중심의 치료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면 중증 환자가 3~4년 이상 방치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환자가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살게 하는 것이 진짜 인권 아닌가. 급성기 정신질환자도 치료받고 좋아지면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데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고 고통 받는 채로 지역사회에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견을 더했다.
이날 학회는 안전하고 편견없는 정신치료환경을 위한 대책으로 '사법입원제도'와 함께 ▲자타해 위험상황에 대한 안전행정대응 등 정신응급환자의 119, 경찰 등의 후송지원 ▲외래치료명령제 작동기전 마련 ▲병원기반 사례관리 지원 ▲OECD국가(보건예산 대비 정신보건예산 평균 5.05%, 현행 한국 1.5% 수준) 에 준하는 과감한 재정 투입 등을 정부와 사회에 촉구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