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온라인 총쏘기 게임(FPS∙First-Person Shooter) 가입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합리적인 기준이라는 반응과 개인정보 침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10일 제주지방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은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제주지역 종교적 병역거부자 12명에 대해 국내 유명 게임업체 회원 가입 여부를 확인 중이다. 이달 기준, 제주에서 재판 중인 당사자는 1심 4명, 항소심 8명 등 모두 12명이다. 이들은 모두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검찰청은 지난달 초 전국 검찰청에 대법원이 판결에서 제시한 양심적 병역거부자 판단 요소를 전파하며 온라인 총쏘기 게임 가입 여부를 참고, ‘신념의 진정성’을 판단하도록 했다. 집총을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들이 총쏘기 게임을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집총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병역거부자가 해당 게임을 자주 한다는 것이 증명되면, 그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검찰의 발표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과 나름 합리적인 기준이라는 반응으로 양분됐다. 네티즌들은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우스워 보이지만 나름 합리적인 방법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거의 모든 온라인게임이 폭력적인데 총쏘기 게임 외에 다른 게임에도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 생각은 다르다. 먼저 국가가 민감한 개인정보를 조회하는 문제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게임 가입 여부는 엄연히 민감한 개인정보”라며 “그런데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는 방법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판단하는 가이드라인으로 삼겠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 간사(예비영 해병대 대위)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이미 국가에서 요청한 객관적 자료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인터넷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기록을 추가로 청구한 것”이라며 “사생활 침해이며 필요 이상으로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또 검찰의 이 같은 방침이 지난해 ‘양심적 병역 거부는 무죄’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방 간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군대 입영 거부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라고 봤다. 그러나 검찰은 여전히 제주 지역 종교적 병역거부자 12명을 처벌하기 위해 방안을 고심 중”이라며 “이는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것으로도 비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검찰은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취지 판례를 정립한 뒤에도, 관련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에 잇따라 항소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산지검은 항소심에서 종교적 신념을 위해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되 무죄를 받은 사건 3건을 항소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전주와 수원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검찰은 항소 방침을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할 경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 가려내는 일이 중요하다’며 10가지 판단요소를 제시했다. 이 판단 요소는 △종교의 구체적 교리 △교리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명하는지 △신도들이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지 △종교가 피고인을 정식 신도로 인정하는지 △피고인이 교리를 숙지하고 철저히 따르고 있는지 등이다.
또 △피고인이 주장하는 병역거부가 교리에 따른 것인지 △피고인이 종교를 신봉하게 된 동기와 경위 △개종했다면 그 경위와 이유 △피고인의 신앙 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 △피고인의 가정 환경, 성장 과정, 학교 생활, 사회 경험 등 전반적 삶의 모습도 기준에 포함됐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