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분만병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서울 제일병원이 결국 회생절차 준비에 돌입했다.
제일병원은 지난해 말까지 복수 투자자를 대상으로 인수협상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더 이상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병원으로서는 회생절차(법정관리)가 마지막 선택지가 된 셈이다.
병원 측은 이번 달 내로 법원에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하고 조정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아직까지 내부 의견은 모아지지 않은 상태다.
당초 병원은 이번 주 내로 회생절차와 관련해 노조, 교수진, 병원장이 함께하는 내부 회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노조 측은 정해진 바 없다고 전했다.
앞서 노조와 병원은 회생절차 시기와 방향을 두고 다소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노조 관계자는 “최근 병원 측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아직 답변이나 회의 일정이 잡히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병원은 현재 분만실과 신생아실을 폐쇄하고 일부 외래진료만 유지한 채 축소 운영 중이다. 지난달 말부터는 내원 환자들에게 ‘당분간 검사 일부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안내하고 있다.
위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의료진과 직원들의 이탈현상도 이어졌다. 현재 정규직 직원 450명 중 절반가량은 퇴직 또는 휴직상태며, 임금은 지난해 5월부터 축소 지급되다가 9월부터는 전액 체납되고 있다.
남은 직원들은 ‘회생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제일병원 간호사 A씨는 “이대로 무너지기에는 아깝고, 충분히 살아날 수 있는 병원이라고 믿으면서 동료들과 버티고 있다”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부인과 인프라 축소를 우려하면서 ‘병원 정상화’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같은 내용으로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은 국민 2000여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병원에 내원했던 환자들은 전원의뢰서 및 제증명 서류 발급, 냉동배아 이동 등으로 병원을 찾고 있다. 과거 이 병원에 입원했던 B씨는 “예전에 진료 받았던 서류를 받으러 얼마 전 방문했다”며 “의사선생님과 간호사선생님들 모두 잘 보살펴주셨는데 폐원 위기라고 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올 초 배우 이영애씨 등을 중심으로 병원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회생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도 했다. 이영애씨 소속사는 “제일병원이 법정관리를 신청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다른 지인들과 함께 병원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인수 움직임이 현실화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 서울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제일병원은 1963년 국내 첫 여성전문병원으로 문을 열었다. 개원 후 25만 명 이상 신생아가 태어나는 등 전국 분만건수 1위를 유지해온 병원은 최근 경영실패와 저출산 여파로 개원 5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제일병원의 채무금액은 은행빚 800억원과 체불임금·퇴직금 등을 포함해 지난해 기준 1000억원대 규모로 알려진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