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은 없다.”
소비 양극화 속에서 유통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말처럼 초저가·프리미엄 상품의 매출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반면, 중저가 상품은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고객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간은 결국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소득 양극화가 이런 소비 양극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월평균 가계 소득에 따르면, 소득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월평균 가계소득은 474만8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6% 증가했지만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32만 원으로 1년 전보다 오히려 7% 줄었다. 상위 20% 가구는 같은 기간 소득이 8.8% 늘어 하위 20% 소득의 5.52배였다. 3분기 수치로는 11년 만에 가장 차이가 컸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은 명품을 중심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간 있는 반면, 대형마트는 '초저가'를 앞세운 온라인몰에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통가에 소비 양극화가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주요 백화점들은 명품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화점 3사의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명품 매출 신장률을 보면, 현대백화점의 경우 14.6%, 신세계백화점은 19.7%, 롯데백화점은 19.8%에 달했다. 이 같은 추세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016년과 2017년 명품 카테고리 매출이 각각 9.7%, 11.3% 늘었고 신세계백화점은 각각 9.3%, 18.4% 롯데백화점은 13.8%, 5.5% 증가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과감히 소비를 하는 ‘가치소비’ 트렌드가 최근 자리를 잡아가면서 남들이 쉽게 살 수 없는 명품 등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면서 “주로 찾는 상품군도 의류, 잡화 중심에서 주얼리, 슈즈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형마트는 부진에 신음하고 있다. 업계 1위인 이마트에 대해 한화투자증권은 지난 18일 “예상보다 영업환경이 더욱 어려워 부진은 피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마트의 지난해 4분기 총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한 3조9390억원, 영업이익은 20.9% 감소한 1천121억원으로 추정된다. 1~2인 가구 비중이 크게 늘어나 장보기가 줄어들고, 외식 비중이 증가한 탓이다. 소비자들이 온라인 특가 상품, 편의점을 선호하는 현상도 한몫했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역시 부진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대형마트는 온라인 쇼핑의 공세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도 없에며 몸집마저 줄었다. 지난해 롯데마트 동대전점, 이마트 부평점, 시지점, 홈플러스 부천중동점, 동김해점이 폐점했고 올 상반기 이마트 덕이점도 문을 닫는다. 본격적인 성장둔화 국면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이마트는 ‘초저가’를 내세우며 총력전에 나섰다. 지난 3일 ‘국민가격’ 이라는 프로젝트로 990원 전복, 990원 삼겹살 등을 선보이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한편 소비자들은 온라인 '초특가' 제품에 몰리고 있다. 쿠팡과 티몬, 위메프 등이 앞다퉈 ‘가성비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바로 가져다주고, 가격도 훨씬 싼데 왜 마트를 가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쿠팡은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인 5조원을 기록했고, 전매특허인 '로켓배송'은 작년 9월 기준 누적 배송 상품 10억 개를 돌파했다. 위메프도 지난해 7월 거래액 5000억을 넘어섰다. 전년 하반기 4000억 돌파 이후 불과 1년 만이다.
리퍼브 시장의 위상도 달라졌다. 과거에 ‘B급’, ‘떨이’로 여겨지며, 기업과 소비자 사이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최근엔 유통가와 소비자가 주목하는 시장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리퍼브 상품’은 유통기한, 제품 흠결, 반품으로 가치가 떨어진 상품을 값싼 가격으로 되파는 것을 말한다. 관련 상품을 취급하는 킴스닷컴, 이유몰, 떠리몰 등의 쇼핑몰 역시 전례 없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리퍼브 시장의 규모는 온라인 쇼핑의 성장에 힘입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명품이 날개돋인 듯 팔리는 와중에도 한쪽에선 초특가를 내세운 온라인 몰에 소비자들이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소득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만큼, 유통가의 소비 양극화 현상 역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