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천막농성 '1692일째'…출구 없는 '강대강 대치'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천막농성 '1692일째'…출구 없는 '강대강 대치'

기사승인 2019-02-03 10:41:23

"최저 생계비 수준에서 시급 800원 더 올려달라는 거 였는데…이제는 집, 통장 다가져 가도 좋습니다. 끝까지 (투쟁) 하겠습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일 저녁 무렵, 귀갓길 차량이 북적이는 울산과학대 정문 한쪽에 스티로폼과 거적 등으로 엉성하게 쳐진 천막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김순자(67) 지부장(민주노총 울산과학대지부)의 표정은 결연했다.

2일 현재 농성 1692일 째. 지난 2014년 6월16일 동구청 인근 대학 정문 앞에서 농성을 시작할 때에만 해도 해를 거듭하며 이렇게 길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동안 울산시를 비롯해 동구청, 정당, 노동청, 민주노총 등 중재와 조정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곳은 많았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65세 전후이던 청소노동자들은 70세 안팎 노인들로 변했다. 숫자도 20여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9월 추석까지만 해도 이들과 함께하던 현모씨(72·여)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천막살이 대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여성 5명과 남성 2명 등 7명의 청소노동자들은 법원의 퇴거(철거) 명령 불복에 따른 강제이행금 1억원 가량을 멍에로 짊어지고도 날이 갈수록 되려 비장감을 보이고 있다.

5년 전 이맘때 대학측과 이들 청소노동자들이 막판에 상호 제시한 임금 협상안의 간극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당시 노조 측의 최종 요구안은 연봉 2200여만원이었고, 대학측은 2000만원선이었다. 노조 측은 시급 5210원을 6000원으로, 상여금을 100%에서 200%로 올려달라는 것이었지만, 사측은 시급 5580원, 상여금 동결을 끝가지 고수했다.

그해 서울 14개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시급이 임단협 결과 6200원으로 정해졌던 점을 감안하면 상호 절충 여지가 많을 법했지만, 양측의 대립은 벼랑 끝 대치국면으로 치달았다. 3번의 강제철거와 하루 30만원씩 강제이행금. 이에 따른 청소노동자들의 격앙된 감정은 '원직 복직' 이외 다른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없게 했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던 지난 2017년 4월, 당시 문재인 후보는 '고용보장' '파업기간 임금지급' '민형사상 소송 취하 및 손배가압류 해지' 등에 대한 민주노총 울산본부의 입장 질의에 대해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민생본부장과 윤은혜·송옥주 의원 등도 대학 총장을 만나며 적극 중재에 나섰지만, 강대강으로 맞선 양측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 7월 출범한 송철호 시장 체제 이후 울산시에서 대학측으로부터 '경제적 지원' 협상안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원직 복직'이라는 마지노선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청소노동자들의 닫힌 마음에 다가가기에는 힘들어 보이는 국면이다. 

특히 대학측은 지난 2014년 이들을 제외한 청소 하청업체의 '고용승계' 이후 현재로서는 이들을 복귀시킬 수 있는 묘안을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법을 앞세워 대학 교정에서 천막을 내몰았던 사측이 장기 농성으로 곤혹스런 상황에 몰린 반면 청소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의 지원에 기대어 오히려 길고 긴 장정에 대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공장에 주문한 양말을 민주노총 사업장에 판매하는 루트를 통해 생활비를 조달하고 있다.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의 관심도 갈수록 더욱 애틋해지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둔 1일 저녁에는 진보정당 출신인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농성장을 찾아 이들을 격려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30일 농성장을 방문했다는 정창윤 울산시 노동정책 특별보좌관(노동특보)는 1일 기자와 통화에서 "대학 측이나 노조 측 모두 한치의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서 있는 상황에서 중재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답해 했다.

'인도적 차원에서 경제적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는 대학 안팎의 얘기가 나도는 것과 관련해 대학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홍보 책임자에게 전화했지만 1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농성 일지>
▲ 2013년 3월 교섭 시작

▲ 2014년 6월16일 - 동부캠퍼스 본관 농성시작
▲ 2014년 8월8일 - 여성노동자 3명 강제 연행 조사 (법원 영장 기각)
▲ 2014년 10월21일 - 울산지법 본관 농성장 강제철거 (중앙광장으로 이동)
▲ 2014년 11월4일 - 울산지법 강제이행금 하루 30만원씩 부과 (당시 16명) 

▲ 2015년 5월18일 - 울산지법, 동부캠퍼스 본관 중앙광장 천막 강제철거

▲ 2017년 1월10일 - 을지로위원회, 허정석 총장, 정정길 울산공업학원 이사장 면담 
▲ 2017년 2월9일 - 울산지법, 중앙광장 농성장 강제철거 -3번째(970일)
▲ 2017년 2월15일 - 민노총 ‘강제철거 규탄 고용보장 이행 촉구' 결의 대회'
▲ 2017년 3월14일 - 을지로위원회 우원식·유은혜·송옥주 의원-허정석 총장 면담
▲ 2017년 4월28일 -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민생본부장 현장 방문 ‘당차원 지원 약속'

▲ 2018년 9월 - 정창윤 울산시 노동특보 중재안 마련, 양측 타결 실패 

울산=박동욱 기자 pdw7174@kukinews.com

박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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