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땅값의 형평성을 위해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를 9.42%로 올렸다. 이는 지난해 상승률보다 3.4%p 높은수치로, 지난 2008년(9.63%) 이후 11년만 최고치다. 현실화율은 2.2%p 상승한 64.8%로 나타났다. 서울 표준지 공시지가가 6.89%에서 13.87%로 오르며 전국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일각에선 공시지가 인상으로 임대료 상승 등이 야기되면서 서민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만 업계 전문가들은 서민 피해가 일어나는 지역은 임대료가 지나치게 높았던 일부 지역에만 해당하는 얘기라며 서민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다만 경제가 좋지 않은 현 상황에서 공시지가 상승은 극심한 거래절벽을 불러일으켜, 부동산 시장은 더 침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표준지공시지가 변동률 9.42%…서울 13.87%
올해 표준지공시지가 변동률은 2018년 6.02%에서 3.4%p 상승한 9.42%가 됐다. 올해 현실화율은 지난해 62.6%에서 2.2%p 상승한 64.8%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현실화율은 ▲표준주택 51.8% ▲토지 62.6% ▲공동주택 68.1% 등이었다.
권역별 공시지가 상승률은 ▲수도권(서울·인천·경기) 10.37% ▲광역시(인천 제외) 8.49% ▲시․군(수도권·광역시 제외) 5.47% 각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도별로는 ▲서울(13.87%) ▲광주(10.71%) ▲부산(10.26%) ▲제주(9.74%) 등 4개 시·도는 전국 평균(9.42%)보다 높게 상승했다. 서울은 국제교류복합지구·영동대로 지하 통합개발계획, 광주는 에너지밸리산업단지 조성, 부산은 주택재개발 사업 등의 요인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충남(3.79%) ▲인천(4.37%) ▲전북(4.45%) ▲대전(4.52%) ▲충북(4.75%) 등 13개 시·도는 전국 평균(9.42%)보다 낮게 상승했다. 충남은 세종시로의 인구 유출(공주), 토지시장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 등으로 낮은 상승률을 나타낸 것으로 분석된다.
시·군·구별로는 전국 평균(9.42%)보다 높게 상승한 지역은 42곳, 평균보다 낮게 상승한 지역은 206곳이며, 하락한 지역은 2곳으로 나타났다.
최고 변동 지역은 서울 강남구(23.13%)였다. 이어 ▲서울 중구(21.93%) ▲서울 영등포구(19.86%) ▲부산 중구(17.18%) ▲부산 부산진구(16.33%) 순으로 나타났다.
최저 변동 지역은 전북 군산시(-1.13%)로 집계됐다. 이어 ▲울산 동구(-0.53%) ▲경남 창원시 성산구(1.87%) ▲경남 거제시(2.01%) ▲충남 당진시(2.13%) 순으로 낮은 변동률을 보였다
가격수준별로는 1㎡당 10만원 미만은 29만7292필지(59.4%), 10만원 이상~100만원 미만은 12만3844필지(24.8%)으로 나타났다. 100만원 이상~1000만원 미만은 7만5758필지(15.1%), 1000만원 이상~2000만원 미만은 2234필지(0.5%), 2000만원 이상은 872필지(0.2%)로 나타났다.
가격에 따른 표준지 변동의 경우 1㎡당 10만원 미만 표준지 수는 지난해보다 3593필지(1.19%) 감소했다. 2000만원 이상의 표준지 수는 도심상업용지 가격 상승 등에 따라 289필지(49.57%)가 늘어났다.
◇“조세 전가로 서민 피해 발생할 것…다주택자들 숨통 필요”
업계에선 공시지가 인상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일각에선 다주택자들로 하여금 조세저항을 불러일으켜 부동산 시장이 더욱 침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거래절벽이 심각한 상황에서 세금 부과가 이뤄지면 시장은 더욱 위축될 것이란 설명이다. 또 공시지가의 급격한 인상은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져 서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진형 교수(경인여대, 대한부동산학회 회장)는 “공시지가가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이 올랐다”며 “이에 따라 양도세나 재산세, 보유세 등이 높아지게 될 텐데, 결국 이는 세금 부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거래절벽이 이뤄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수도 안팔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가격 안정화를 이루는 건 좋지만 시장 기능을 마비시켜서 안정시키는 건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단계적으로 인상시키는 방향으로 가거나 다주택자들의 조세저항이 덜 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심교언 교수(건국대 부동산학과)는 “경제가 현재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하방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시가격 인상이 이뤄지면 거래절벽 현상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며 “이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의 장기화로 이어져 거시경제가 타격을 입을 거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공시지가 인상은 결국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피해를 보게 되는 건 서민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강남, 명동, 성수, 합정, 연남, 용산 등 상권이 번화한 곳에서는 보유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면서 임대료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임대료가 상승하면 임대료 감당이 어려운 상인이나 업종은 퇴출될 수밖에 없어 장기적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되고 매년 임대료 인상률 상한이 5%로 제한되기는 한다”면서도 “세입자가 임차료를 3기이상 미납하거나, 계약종료 6개월~1개월 전까지 임대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계약연장의사표시를 하지 못할 경우 계약연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 있다”고 설명했다.
◇“서민 피해 없을 것…젠트리피케이션은 이전부터 있었다”
반면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서민 피해는 일부 지역에만 해당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들은 이번 공시가격 인상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 시장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임대료 차이에 따른 지역 간 차별화가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전보다 월세수익을 선호하는 흐름이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감시팀장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서민 피해는 공시가격 인상이 이뤄지기 이전에도 늘 발생해오고 있던 문제”라며 “그 부분에 대해선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으로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불평등한 공시지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표준지공시지가를 2배로 올렸어야 했지만 전체의 0.4%인 극히 일부만 20% 상승했을 뿐 나머지 99.6%는 7.3% 상승하는 데 그쳤다”며 “공시지가 현실화를 위한 정책적 판단은 없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도 “보유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내수경기 침체로 공실이 늘고 있어 세입자에 대한 조세전가는 일부 핫플레이스 지역을 제외하곤 쉽지 않을 거라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동인구가 많고 공실이 낮으며 임대료 수준이 높은 초역세권, 먹자골목 일대와 다른 비활성화지역 간 차별화 극심 예상된다”며 “이에 따라 과거보다는 자본이득보다 월세수익을 더 선호하는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