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정책 논의과정에서 등을 돌렸다. 당장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일환인 ‘두경부 MRI 및 초음파 급여화’ 회의가 취소됐다.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논의기구인 ‘안전진료TF’ 회의의 개최여부도 미지수다.
대한의사협회는 13일, 향후 보건복지부와 산하기관이 주최하거나 개최하는 모든 회의 및 참석위원 추천을 거부하겠다는 대정부 협상의 ‘전면 보이콧’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폐업위기에 몰린 막다른 상황에서 신뢰할 수 없는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박종혁 대변인은 “(의료기관은) 정책적 통제로 인해 단돈 10원도 마음대로 올려 받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최저임금 상승 등 급격한 인건비 증가 등으로 폐업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며 “막다른 상황에서 정부의 긴급한 재정투입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보이콧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수가 중 의사의 월급은 일부에 불과하다.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행위와 재료, 약제비, 간호사 인건비 등이 모두 녹아있다. 심지어 병원 운영이 불가능해 장례식장 등으로 벌충해야하는 저수가 구조와 같은 현행 의료체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조만간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총파업 등 총력 투쟁을 시사했다.
대통령을 비롯해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 보건의료 정책을 설계하고 결정하는 이들조차 저수가 등으로 인한 심각한 의료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데 공감하며 개선을 약속하면서도 정작 바꾸려하지 않는다는데 실망하고 기대와 신뢰가 깨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신뢰를 갖고 하소연도하며 바꾸려했다. 가두집회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불참선언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바꾸려하지 않았다. 정부가 신뢰를 깨뜨렸다”며 “이대로는 국민이 원하는 제대로 된 진료, 맘 편히 안전하게 진료 받을 환경을 만들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의사협회의 강경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사협회가 회의참석을 중단하고, 위원추천을 거부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정책추진은 계속해야한다는 뜻이다.
실제 복지부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은 “안전진료TF와 같이 의료인의 안전한 진료환경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에도 참석치 않는다면 매우 아쉽다”면서 “국민건강과 환자안전을 위한 정책결정과 논의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되기에 협의는 의사협회가 없이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장은 “의료계와 정부 모두 본연의 목적은 같다고 생각한다. 중증환자의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건강보험 비급여의 급여화를 우선 추진해왔고, 그 과정에서 의료계의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비급여의 규모를 상회하는 보상을 해오고 있다. 앞으로도 정부는 의료계와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한 대화와 소통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동네의원 교육상담 사업 ▲만성질환 관리사업 ▲진료의뢰-회송 사업 ▲방문진료 수가개발 등 일차의료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수가개선방안이나, ▲응급실 및 중환자실, MRI 등 중증질환자와 필수의료의 환자부담 해소 ▲진찰료의 적정화를 핵심으로하는 3차 상대가치점수개편 등 진료정상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점이 많다고 시사하며 협조를 거듭 당부했다.
이와 관련 박종혁 대변인은 되돌릴 수 없다는 의사협회의 강한 의지를 전했을 뿐이다. 그간의 논의과정이 위태로운 줄타기였을 뿐 아니라 뻔히 보이는 정책실패와 그로 인한 국민과 의료인의 피해를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 대변인은 “환자를 앞에 두고 업무시간이 지났다고 진료를 미루는 의사는 없다. 그로 인해 과로가 일상이 됐고, 사고를 부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의료가 헌법을 초월한 희생으로 유지돼선 안 된다”면서 “무리한, 행정편의적이고 정치적인 정부의 인식에 일침을 가할 것”이라며 의사협회의 ‘준법진료’를 중심으로 체계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고 답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의 힘겨루기가 심화됨에 따라 보건의료정책 결정과정에서 대한병원협회의 위치와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의사이긴 하지만 동시에 병원을 경영하는 경영자들이 모인 단체로 의사협회와는 입장이 사뭇 다를 수 있어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보건의료정책이 의료기관의 운영이나 서비스에 관한 내용이기에 의사협회가 대화거부를 천명해도 정부가 병원협회와 대화를 이어간다면 투쟁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병원협회가 (투쟁에) 동참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심지어 이 관계자는 “들여다보면 정부가 저수가를 보상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수가체계를 정비하며 적정보상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의사협회의 결정이나 최대집 회장의 발언 등을 볼 때 다수 의사들이나 병원협회의 참여를 이끌어내기엔 명분이 약하다. 마치 대정부 투쟁을 하기 위해 이용하는 모양새”라고 혹평하기까지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