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C형간염 집단감염사태를 비롯해 해마다 1회용 의료기기의 재사용으로 인한 감염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국회는 1회용 주사기 재사용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후속조치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하다 적발된 의료인의 자격을 6개월간 정지하는 내용의 행정규칙도 공포했다. 이후 1회용 의료기기의 재사용 문제는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의료기관에서의 1회용품 재사용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지난해 말, 경상남도 진주에 위치한 경상대학교병원에서 스탠트시술로 알려진 심혈관 조형술에 사용되는 일부 일회용 치료재료가 재사용돼왔던 사실이 우연히 밝혀졌다.
의료기사로 근무했던 A씨가 스탠트 등 의료기기를 납품하는 7개 업체로부터 약 1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사건이 병원 내부감사결과 드러났고, 이를 경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재사용 문제가 확인된 것.
1회용 의료기기 재사용 문제를 담당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경찰의 협조요청에 의해 사실 확인에 나섰고, 스탠트 시술에 쓰이는 일부 1회용 제품이 소독 후 재사용된 정황을 파악해 경찰에 결과를 통보했다”고 답했다. 병원도 “해당 직원의 혐의사실을 알게 된 후 파면했다”며 “재발방지를 위해 내부교육과 시스템 개선 등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진주경상대병원 1회용 치료재료 재사용 사건이 이들만의 특별한 일도 아니며 금품수수사건이 적발되지 못했다면 외부로 드러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1회용 치료재료 재사용 문제는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만연하다.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만연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소수가 끈끈한 유대관계 얽혀있는 수술실이라는 공간적 특성에 따라 말이 외부로 세나오기 어려울 뿐 아니라 건강보험 급여기준이나 의료기기 허가체계의 문제로 인해 재사용이 가능한 의료기기가 1회용으로 분류되고, 급여기준에 의해 1회용 의료기기를 재사용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 불합리한 체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다.
실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일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정감사에서 1회용 치료재료 수가가 10여년간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아 의료기기의 적정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데다 수가산정기준조차 안전성이나 유효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2~3회 이상 다회사용을 전제로 설계돼 1회용 의료기기의 재사용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때문인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또한 지난해 6월,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모든 1회용 의료용품의 재사용 금지를 목적으로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검토하며 “1회용 의료용품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못하고, 건강보험 재정적 측면, 의료폐기물 등 환경적 측면, 재처리 가능한 품목이나 방법, 수가 등의 검토가 선행돼야할 것”이라며 재논의 결정을 내렸다.
안타까운 점은 계류 결정 이후 논의가 사실상 멈췄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등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1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에 대한 추가적인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소독 등 재처리 후 재사용이 가능한 1회용 의료기기의 분류나 수가개선 논의를 비롯해 다회 사용이 가능한 의료기기를 1회용으로 허가하는 심사기준의 개편은 여타 현안으로 인해 미뤄진 듯하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관계자는 “지난해 6월 발표한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 종합대책에 맞춰 병원 내 감염관리를 해나가고 있다”면서도 “1회용 주사기를 제외한 치료재료에 대한 재사용 문제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인데다 합의가 필요한 사안도 있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게다가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의료관련감염 예방 및 관리체계 부실문제도 여전히 답보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 보건소 등 지방자치단체 단계에서 예방 및 관리가 이뤄지고 있지만, 인력부족 및 업무과중 등으로 종합대책이 나온 지금까지 사실상 의료관련감염은 개별 의료기관의 자율에 맡겨지다시피 방치되고 있었다.
이와 관련 한 시민사회일원은 “감염문제는 끝이 없다. 하지만 막을 수 있는 문제 또한 아직 많다. 그 첫 손에 꼽히는 것이 1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에 의한 감염문제”라며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 환자피해가 계속된다. 원칙만 지키면 발생하지 않을 피해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