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올해로 30세가 된 전공의 신 씨가 당직근무 중 병원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신 씨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2주가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근무했던 병원은 7일 ‘돌연사’라며 1차 부검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8일 유가족은 ‘과로사’라며 맞섰다.
돌연사라면 누구의 과실도 없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죽음인 반면, 과로사라면 과중한 업무나 노동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사회의 일반통념이 차별로 작용해 상대적으로 소회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적 타살’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전국 전공의들의 모임인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는 14일, 병원과 의료계, 정부가 신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2년 한 전공의의 사망사건과 함께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지도층의 안일한 인식과 행동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승우 대전협 회장은 “2012년 전공의 사망 당시 모든 병원과 보건복지부는 이런 일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면서 2016년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고 학생이자 근로자인 이중적 지위의 특수성을 보장하기 위해 일명 ‘전공의법’이 마련됐지만 불법행위는 여전하며 오히려 방조, 조장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 씨에 대해서도 이 회장은 “법으로 정한 주당 80시간이 아닌 110시간의 일을 하고 있었고, 하루 4시간의 휴게시간은 서류에만 존재했다. 36시간으로 제한된 연속근무시간을 한참 넘긴 59시간을 일했다”면서 “병원은 이 같은 상황에서 법을 지켰다며 돌연사라고 주장하며 유가족에게 설명은커녕 진정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병원의 태도를 비난했다.
이어 “더 참혹한건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진행한 수련환경에 대한 설문조사결과 길병원의 여건이 여타 수련병원과 비교하면 상위권에 있다는 점이다. 110시간의 근무와 59시간의 연속근무가 상위권이면 전국 수련병원은 얼마나 일하고 있겠느냐”면서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조장하는 것이 수련병원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전공의법에서 주당 80시간, 연속 36시간이 넘지 않도록 제한한 근무시간을 맞추기 위해 이중장부인양 실제 당직순번과는 다른 허위 당직표를 만들고, 퇴근 시간이 지나면 전자의무기록(EMR)에 접속할 수 없도록 아이디를 차단해 타인의 아이디를 도용해 환자의 약 등을 처방하고 진단결과를 입력해야하는 불법이 직·간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
더 큰 문제는 일련의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문제를 관리·감독하기 위해 법으로 1년에 1번씩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도록 한 ‘수련환경평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그나마 적발된 문제들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묵인되거나 묵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전공의들은) 보호받지 못하는데 언제까지 병원만 배려하느냐”며 법 집행의 엄정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수련환경평가를 통해 전공의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법으로 전공의가 보호받고 있는지를 평가해야하지만, 병원이 허위로 작성하거나 형식만 갖춰 제출한 서류로 대부분의 평가가 이뤄진다. 평가위원은 옆 병원 교수들이다. 복지부는 과태료나 시정명령 등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지만 묵과하고 있다”며 “법조차 전공의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의 반발이 거세지며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같은 날, 2018년에 시행한 수련환경평가 결과에 따른 행정처분을 내리겠다고 사전예고 없이 급히 발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행정처분 대상은 전체 수련기관 244곳 중 38.5%인 94곳이다.
이 중에는 42곳의 상급종합병원 중 32곳이 포함됐다. 이들의 28.3%는 주1회 유급휴일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1주일 80시간의 최대수련시간을 어긴 곳이 16.3%, 연속해서 36시간을 근무하도록 한 곳도 13.9%에 이르렀다. 이들은 100만~500만원의 과태료를 내고 3개월 내 지적된 사안들을 개선해야한다. 만약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수련기관에서 제외될 수 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