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사실상 허가만 남았다"

"원격의료, 사실상 허가만 남았다"

논란 재점화… ‘원격의료=의료영리화’ 공식 깰 정부결단 필요해

기사승인 2019-03-05 01:00:00

최근 정부가 손목시계형 심전도측정기를 ICT 규제샌드박스 1호로 선정하자 원격의료 논란이 다시 격화됐다. 의료계는 진료의 안전성을, 시민사회단체는 의료영리화 및 대형병원 환자쏠림의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대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산업계는 답답하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원격의료가 의료영리화로 가는 수순이라는 오해에 막혀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의료관련 벤처기업 대표는 “사실상 원격의료는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정부의 결단이 부족할 뿐”이라며 “원격의료 관련 기술이나 장비,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하라면 국내시장을 떠나라는 것”이라고 답할 정도다.

◇ 원격의료, 어디까지 왔나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인 규제샌드박스 규정을 근거로 휴이노와 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의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서비스’를 실증특례 적용사례로 지정했다.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험·검증할 목적으로 제한된 구역에서 규제를 면제하는 제도다. 규제샌드박스 안전을 심의한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는 “앞으로 2년간 약 2000명 이내 환자를 대상으로 실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휴이노 등에 따르면 실증특례로 지정된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기는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심전도 측정기의 축소형으로 손목에 차는 것만으로 심전도를 상시 측정해 착용자의 심전도 정보를 원격저장공간(클라우드)에 전송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정상수준을 벗어난 이상반응이 측정될 경우 기계적으로 의료기관 방문을 알릴 수 있는 기능도 탑재된다. 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 담당 전문의는 환자 진료 전이나 환자 문의가 있을 경우 클라우드에 저장된 측정정보를 바탕으로 환자 상태를 판단할 예정이다.

휴이노 관계자는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심전도 측정용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자체 평가결과 허가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클라우드 또한 민감정보보호 국제규격에 맞춰 정보유출 등의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휴이노의 손목시계형 심전도측정기 외에도 실시간으로 당뇨나 혈압 등을 측정해 저장 및 전송할 수 있는 장비들이 정부의 결단만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ICT 전문가들은 “이미 해외에서 상용화된 제품들이 다수인데다 국내 기술수준 또한 원격의료 구현에 하등 문제가 없다”고 평가한다.

AI(인공지능)와 클라우드, IoT(사물인터넷) 등이 연결돼 수면무호흡증과 같은 수면장애를 비롯해 각종 질환에 이르기까지 신체적·정신적 이상 행동 및 반응, 문제를 즉각적으로 파악해 치료를 권하는 기술도 구현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당장 보건복지부는 2014년 9월부터 섬이나 도서산간지역 등 의료취약지에 한정해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오는 4월부터는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통해 환자와 코디네이터 간 비대면 모니터링 및 교육·상담이란 명목의 원거리진료상담을 실현할 예정이다.

◇ 조심스럽기만 한 보건복지부

이처럼 원격의료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이뤄지고 있거나 즉각적으로 구현될 준비가 끝난 상황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라는 단어는 결단코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휴이노의 손목시계형 심전도측정기를 둘러싼 원격의료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고위직들까지 나서 원격의료는 아니라는 해명을 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복지부 담당과는 휴이노와 고대안암병원으로 원격의료 논란을 방지하기 위한 진료지침을 마련해 제출할 것을 주문했다. 나아가 측정기를 통해 확인된 환자의 이상반응에 대해 기계가 직접 판단할 수 없도록 차단하고 의료인에 의해서만 진단 및 안내가 될 수 있도록 제한하도록 권고했다.

다만, 일련의 기술발전이나 의료서비스와의 접목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는 뜻은 굽히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심전도 측정의 경우만 해도 의료기관에서 방문해 하루 이틀 측정한 값만으로 의사가 진단하기보다는 연속적으로 장기간 측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진단하는 것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침습적 행위가 필요하거나 심대한 위해가능성이 있는 경우 엄격한 관리가 이뤄져야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위해성이나 오작동, 부작용 등이 줄어들고 환자의 건강이나 의사의 진단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라면 시범사업 등을 거쳐 육성하고 발전시켜 접목해야하지 않겠냐”며 환자와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는 분명한 기준 아래 사업을 추진해갈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복지부의 이 같은 반응의 뒤에 원격의료는 의료영리화로 이어지는 단초이며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이나 오진에 따른 환자위해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의료계가 있다고 풀이한다.

앞선 의료관련 벤처기업 대표는 “원격의료와 원격진료, 원격모니터링이 혼용돼 ‘나쁜 것’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문제가 있다”며 “가보지 않은 길을 예단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해가며 한 발씩 나아갈 필요가 있다. 기술수준이 향상되며 오진의 위험은 줄고 환자 쏠림 등의 문제는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의료영리화와 관련해서도 그는 “원격의료가 의료영리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건강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보다 나은 제품을 개발하고, 건강관리를 잘하는 이들에게 보험료를 낮춰주는 것과 같이 이익에 상응하는 혜택도 제공해야한다”며 “우려를 최소화하고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질 수 있는 규제장치를 고민하는 것이 생산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복지부의 조심스럽기만 한 태도와 달리 과기정통부나 정부 고위층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과기정통부는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공개하며 “해당 사안을 통해 원격진료를 본격화하려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규제 샌드박스가 원격의료와 선을 긋고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심지어 홍완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2월 15일 중소기업중앙회 CEO 혁신포럼에서 “우리나라가 10대 경제국인데 선진국들도 다하고 있는 원격의료를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이해관계 집단 간 갈등을 현명하게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며 국가경제와 산업발전, 나아가 국민건강과 의료서비스의 도약에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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