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여의도 증권가에 주식 브로커로 입성한 조일현(류준열). 하지만 입사 후 10개월 내내 ‘빽’도 ‘라인’도 없이, 거래 체결도 하지 못하고 수수료 0원의 굴욕을 맛본다. 게다가 첫 거래에서 매수와 매도를 착각해 손해를 팀의 성과급으로 메꾸는 바람에 회사에서도 미운 오리 신세. 그러나 그에게 접촉해온 ‘번호표’(유지태)로 일약 인생이 달라진다.
‘번호표’는 그를 한 번 만나려면 여의도 증권맨들이 모두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한다는 신화적인 작전 설계자다.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불법 거래를 ‘번호표’로부터 제안받은 일현은 갈등하지만 순식간에 통장에 7억이라는 돈이 쌓이는 것을 보며 양심도 지우고 계속해 거래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마냥 승승장구할수만은 없다. 번호표의 뒤를 쫓던 금융감독원의 한지철(조우진)이 나타나 조일현을 계속 추궁한다. 일현은 불안에 휩싸이면서도 계속해서 번호표가 주는 돈의 유혹을 거절할 수 없어 두 번째, 세 번째 거래를 지속해나간다. 부모님의 복분자 농장이 커지고, 단칸 자취방이 여의도의 호화 아파트로 변하고, 여자친구도 바뀐다. 일현이라고 바뀌지 않을 리 없다. 그러던 중 일현의 불안이 현실로 나타나며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영화 ‘돈’(감독 박누리)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로 치는 돈을 두고 말초적인 신경전과 양심 싸움을 하는 청년 일현의 이야기다. 주식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증권가 초보인 일현을 통해 관객은 쉽게 주가 조작 사기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며, 큰 돈 앞에서 갈등하는 일현에게 몰입하게 된다.
주식 시장의 초단위 시계를 이용한 영화 초중반의 스피디한 리듬과 끊임없이 쏟아 부어지는 ‘사이다’는 쾌감을 안겨준다. 모두가 예상 가능한 전개와 엔딩이지만 ‘쉽게 간다’는 것은 ‘돈’에 한해서는 단점이 아닌 장점이다. 아쉬운 것은 ‘번호표’를 맡은 유지태의 존재가 유혹과 악이라는 관념 그 자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의 의도는 평범함과 절대악의 대립 속에서 주인공의 선택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니만큼, 일현을 맡은 류준열 또한 본인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보다는 일정한 궤 안에서만 기능적으로 작동한다.
‘돈’은 오는 20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