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악질경찰' 예상된 논란, 거듭된 검열에 사라진 당위성

[쿡리뷰] '악질경찰' 예상된 논란, 거듭된 검열에 사라진 당위성

'악질경찰' 예상된 논란, 거듭된 검열에 사라진 당위성

기사승인 2019-03-14 07:00:00

영화 ‘악질경찰’(감독 이정범)은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악행을 삼던 조필호(이선균)의 이야기를 다룬다. 뒷돈을 챙기고 비리는 눈감으며, 범죄를 사주한다. 거기에 더해 급하게 목돈이 필요하자 경찰 압수창고를 털 계획까지 세운다. 그러나 그의 사주를 받아 창고에 들어간 기철(정가람)이 의문의 사고로 죽게 되고, 거기에 얽힌 다른 사건까지 맞물려 그는 경찰과 검찰의 내사를 받게 된다.

그러다 폭발사건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미나(전소니)와 얽히게 된 조필호. 그는 미나를 쫓으면서 미나의 친구가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의 사망 후 엇나간 길을 가고 있는 미나는 조필호와 사사건건 부딪히며 그를 애먹인다. 하지만 미나는 곤경에 처하게 되고, 조필호에게 도움을 청하며 미약하게나마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가 쌓인다. 미나가 가지고 있는 증거를 검찰에 넘기고 위기를 모면하려던 필호는 더욱 큰 악과 마주친 후, 또다른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악질경찰’은 단순히 상업적으로 평하기는 어렵다. 세월호 소재 때문이다. ‘악질경찰’이 가지고 있는 궤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순탄하게 필호의 궤적을 쫓아가던 관객들은 노란 리본이 등장하는 순간 당황한다. ‘단순히 소재일 뿐’이라며 스크린과 현실을 분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다. 세월호는 영화 중후반을 넘나들며 소재의 당위성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2001년 9.11테러가 미국 사회에 안긴 충격은 대단했다. 여파가 엄청났던 만큼 이를 다룬 매체도 많았다. 하지만 미국의 문화계는 9.11테러를 다루는 데 보수적이었으며 2005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이를 다룬 문학이 하나둘씩 문단에 선보여졌다. 영화는 훨씬 더 늦게 박스오피스에 등장했다. 다큐멘터리나 추모 노랫말은 있었으나, 이를 이용해 창작을 하는 행위에 선을 그었던 것이다. 콜롬비아 대학의 제임스 샤피로 교수는 2005년 당시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그 사건을 실제로 겪었던 이들에게 ‘제대로 만들었다’고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에는 단순히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 이상의 많은 품이 든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만든 작품의 기준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작품에서 그 사건을 반드시 다뤄야 할 이유가 나타나야 하며 주제 의식은 명료해야 한다. 그에 더해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 또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다룬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은 어떨까. 세가지 중 두가지가 부재한다. 주제의식은 있으나 굳이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여야 할 필요가 없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소재로서만 소모되는 것에 가깝다. 세월호 사고 대신 가상의 다른 사고를 집어넣어도, 혹은 실제 다른 사건을 집어넣어도 영화 진행에는 무리가 없다. 이유가 없으니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도 분산된다.

주연을 맡은 이선균과 전소니의 열연도 자연스레 소재에 가려진다. 13일 서울 CGV용산점에서 열린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정범 감독은 “'악질경찰' 시나리오를 기획했을 때부터 논란을 예상했기에 매일 같이 자기 검열을 했다”며 “회차를 거듭할수록 더 검열했다. 관객이 가져갈 긴장감과 재미를 유지하면서 마음에 무엇이 남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너무 많이 검열한 나머지, 있어야 할 것들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오는 20일 개봉.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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