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우상' 한석규 "산다는 것은 다른 것에 반응하는 것"

[쿠키인터뷰] '우상' 한석규 "산다는 것은 다른 것에 반응하는 것"

'우상' 한석규 "산다는 것은 다른 것에 반응하는 것"

기사승인 2019-03-19 07:00:00

“한 부자가 있었어요. 그 부자는 자기가 가진 재산을 가지고 더 큰 재물을 얻을 생각을 했죠. 창고에 가득 재물을 채워놓고, ‘이 재물로 뭘 할까?’하며 부자는 기쁨에 차서 잠이 들었어요. 그날 밤, 그 부자는 그냥 죽었답니다. 최근 제가 계속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예수님이 하셨다는 말이라는데, 보고 한숨을 쉬었어요. 참 쉬운 이야기인데 사람의 어떤, 정곡을 찌르는 말 같아서요.”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의 구명회 역을 맡게 된 이유에 관해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석규는 부자의 이야기를 펼쳐놨다. 처음에는 아리송했지만, 한석규의 이야기를 들으니 알 것 같았다. 

명회는 ‘우상’ 속에서 무슨 짓을 해서든 살아남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모든 이의 우상이지만 뒷면에서는 가장 추악한 짓을 벌인다. 한석규는 “명회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는 않아요. 그저 시나리오 속에서 비겁하게 살아남는 명회를 보면서 ‘아, 하지만 이 남자도 어차피 언젠가 죽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죠. 온갖 짓을 하고 희생을 치르면서도 결국은 살아남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살아남은 바로 그날 밤 죽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이잖아요. 아이러니함이 있죠.”

한석규가 ‘우상’을 택한 이유는 명회 때문만은 아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캐릭터가 아무리 멋지고 ‘폼’나도, 영화가 추구하는 테마가 별로라면 한석규는 영화를 찍지 않는다. 한석규라는 배우의 변신조차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저는 뭐 여태까지 오래하지 않았나요? 앞으로도 오래 할텐데, 뭐. 한 영화에서 제가 변신해봐야 얼마나 하겠어요.”라며 웃었다.

“어쩌다보니 제가 배우 일을 한 지 햇수로 24년이 됐어요. ‘우상’은 24번째 영화고요. 여태까지 영화를 통해서 나름대로 다양한 이야기를 해 본다고 했는데, 그때마다 모두 같진 않았어요. 마냥 착한 사람, 백수, 조폭…. 직업으로만 쳐도 그렇고, 한 작품에서 변신의 폭이 넓은 걸 굳이 꾀하진 않아요. 대신 작품 내에서 진폭이 넓은 인간을 해 보고 싶긴 해요. 그런 캐릭터를 만나면 아주 기쁘죠. ‘우상’의 명회만 해도 진폭이 꽤 있는 사람이잖아요.”

우상이라는 영화가 새롭게 느껴질까, 라는 질문에 관해 한석규는 “내가 외려 관객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어차피 영화는 가짜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차피 다 가짜예요. 아무리 새로워도 진짜는 아니죠. 그림도 그렇고 사진도 ‘진짜’는 별로 없어요. 하지만 그 모든 예술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는 관객들도 알잖아요. 영화는 특히 그게 명확하죠. ‘우상’은 ‘인상이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영화의 엔딩만 봐도 그럴 거예요.”

“최근에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산다는 것은 꾸준히 뭔가에 반응하는 일인 것 같다고요. 우리는 보통 ‘내가 뭔가 한다’ ‘내가 능동적으로 해낸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결국 삶이란 건, 어떤 현상이나 사물, 사건에 내가 반응하는 일인 것 같아요. 연기도 그렇잖아요. 제가 젊을 때는 ‘내가 한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모든 것을 내 위주로만 생각했어요. 내가 할 차례, 내가 나갈 순서만 중요했죠. 그런데 연기는 안 그래요. 좋은 연기라는 건 내가 할 차례만 기다려서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기를 보고 듣고 반응하는 것이거든요. 삶도 그래요. 뭔가 능동적으로 해나간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사실 뭔가에 잘 반응하는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상’은 오는 20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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