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중소병원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대형병원들의 간호사 웨이팅 문제입니다. 간호사 ‘모셔’ 오기도 힘들지만, 당장 있는 인력이나마 계속 근무한다면 현상유지라도 할 텐데 오늘 수술이 잡혔는데 대학병원에 합격했다고 안 나오면 환자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막막합니다.”
산간벽지에 위치한 병원이야기가 아니다. 영국 캠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가 선정한 세계 100대 의학자이자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척추관절병원의 심정현 원장(대한지방병원협의회 학술이사)의 경험담이다. 문제는 이 같은 심 원장의 경험이 그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지역병원협의회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이거나,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이 주변에 경우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대형병원들이 간호사 예비채용(웨이팅) 제도를 유지하는 한 해소되지 않을 문제다.
현재 웨이팅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병원은 42개 상급종합병원의 거의 전부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은 연간 2~3회 이상 간호사 채용절차를 진행하며 필요인력에 더해 이직 혹은 퇴직에 대비한 예비합격자를 많게는 30% 이상 선정하고, 결원이 발생하면 즉시 채용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채용이 예정된, 예비합격자들은 대형병원에서 부를 때까지 자기계발 겸 임상경험을 쌓으며 소일꺼리를 할 수 있는 지역 혹은 중소병원에 적을 두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역·중소병원은 스쳐가는 곳으로 전락하고 숙련된 간호사가 부족해져 의료의 질이 올라가긴 어려운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문제는 최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인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응급의료체계 개편이나 커뮤니티 케어 등 각종 보건복지 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의료기관 외 간호인력의 소요도 높아져 지역·중소병원을 찾거나 병원에 남는 간호사가 더욱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심 원장은 “대형병원들의 간호사 대기자 선발문제만이라도 폐지되면 지역·중소병원의 간호인력 수급문제부터 ‘태움’ 등 사회적 문제까지 해결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다양한 임상경험과 체계를 익힐 수 있는 대형병원으로의 쏠림을 막을 수는 없지만 웨이팅만이라도 없어지면 그나마 숨통은 트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나아가 대형병원들 또한 언제나 대체가능한 인력으로 간호사를 대하는 분위기가 바뀌고, 좀 더 여유롭게 간호인력을 운용하려 노력하는 한편, 태움과 같은 인권침해행위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간호사의 처우문제나 지역·중소병원의 의료 질이 좋아지고, 그로 인한 국민 건강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지역·중소병원들의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정된 인적자원에서 비롯된 문제인데다 대형병원 또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제도적 요인에 갑작스런 퇴사가 개인의 선택에 의한 문제일수도 있어 근본적인 대책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중소병원에서 대형병원으로, 다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공공기관이나 보건직 공무원으로 이어지는 간호사들의 이동이 확대·가속화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형병원들 또한 법에서 특정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 이상의 간호사를 둬야하는 등급제를 두는 한 웨이팅 제도를 폐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웨이팅을 폐지할 경우 수시채용이 이뤄져야해 사회·행정적 비용이 늘고, 지역·중소병원의 간호인력 부족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한 병원계 관계자는 “간호사 수는 한정돼있고 필요로 하는 곳은 계속 늘고 있다. 웨이팅을 폐지하면 대형병원은 더 자주 간호사를 뽑게 돼 오히려 인력수급을 예측해 대비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보건복지부와 간호인력 수급대책에 대해 논의해온 한 관계자도 “대형병원들이 예비합격자를 두는 웨이팅으로 인한 문제점이 제기됐고 논의가 이뤄졌다”면서도 “개인의 선택을 강제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대형병원과 지역·중소병원 간의 갈등을 유발하기보다 양자가 안정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올 상반기까지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