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와 카드사들의 힘겨루기로 촉발된 카드수수료율 전쟁이 카드사들의 완패로 종결됐을까. 결론부터 보면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은 듯 보인다. 적게는 1~2만원이지만,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의료비를 현금으로 내야할 상황이 야기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병원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에서 제시한 총매출 500억원 초과 대형가맹점에 속하는 사립대학교 소속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무늬만 협상인 카드사의 수수료율 ‘통보’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실제 일부 병원은 계약체결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병원계 관계자들은 병원과 카드사 간의 카드수수료율 협상은 협상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대형가맹점에 속하게 된 A원장은 “단 한 번도 협상을 해본 적이 없다. 통보를 받을 뿐”이라며 “이의를 제기하면 그제야 우는 애 달래듯 선심성으로 찔끔 낮춰준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병원장 B씨는 “왜 최고수준인 2.3%가 책정됐는지 물으면 영업비밀이라며 밝히지 않는다”면서 “사실상 병원은 협상카드랄 것이 가맹계약 해지밖에 없다. 이게 어떻게 협상일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500억원을 벌며 10억여원을 못 내냐는 질문에 그는 “500억원 중 인건비 비중만 40%를 넘는다. 여기에 각종 진료재료나 의약품, 시설과 설비 분할금, 기타 비용까지 감가상각을 고려하지 않아도 순수익이 3~4%를 넘기 힘들다. 여기서 2.3%를 때면 남는게 없지 않냐”며 가맹해지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 병원-카드사 수수료율 전쟁, 핵심은 ‘의료의 공공성’
문제는 단순히 카드사의 일방적인 수수료율 통보와 ‘적격비용’으로 불리는 수수료율 산정근거의 비공개만이 아니다. 전 국민이 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하고,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진료를 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국가에서 정한 진료비를 받으며 기타 수익사업을 제한하면서, 카드수수료 등은 의료기관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도 문제다.
금융위원회는 카드수수료 전쟁이 발발하자 “가맹점계약 해지시 소비자는 물론 카드사와 가맹점 모두 피해를 보는 소모적 악순환이 초래된다는 점을 감안해 생산적 논의를 통한 원만한 해결을 기대한다”면서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마케팅 혜택이 집중된 대형가맹점의 비용률이 인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병원계는 근본적으로 카드수수료율을 의료기관이 부담하는 것 자체가 ‘수익자 부담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십분 양보해 진료비를 수익으로 보고 수익자 부담원칙을 적용한다고 해도, 공공적 성격을 가진 의료서비스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여신전문금융업법에서 정하고 있는 우대수수료율 적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병원계 관계자 C씨는 “근본적으로 법에서 수익사업을 금지하는 비영리의료법인이 수익자가 될 수 없지만, 진료비가 수익이라고 해도 정부가 인정한 원가 이하의 저수가에서 과도한 노동으로 버텨온 병원들에게 수수료를 부담시키는 것은 불법을 부추기고 노동력을 착취하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대한병원협회는 병원들의 민원을 바탕으로 대응 논리를 마련했다. 요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정하고 있는 필수공익사업에 병원사업이 포함된 규정과 여신전문금융업감독규정에서 공공성을 갖는 경우 적격비용을 차감조정 기준을 준용, 카드수수료율을 낮춰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논리가 담긴 의견서를 지난해에 이어 최근 금융위원회 등에 전달했다. 이와 관련 병원협회 관계자는 “당초 협상 자체가 기울어진 시소협상일뿐더러 필수공익사업에 속하는 병원사업이 아니면 어느 분야가 여전법에서 적시한 공공적 영역인지 모르겠다. 관련해 금융위에 의견을 전달했지만, 어떠한 답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어 사견을 전제로 “수익의 공공적 성격을 감안해 총매출 기준의 수수료율 차등구간을 설정할 것이 아니라 여전법에서 정하고 있는 우대수수료 적용업종의 업종구분부터 설정하고, 그마저 어려워 매출을 기준으로 하겠다면 순이익을 잣대로 삼는 것이 형평에 맞을 것”이라고 했다.
◇ "수동적 정부대응, 의료붕괴 부추긴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A 원장은 “복잡한 논리를 떠나 수수료가 올랐다고 법으로 정한 의료비를 올려 받을 수도 없고, 진료량을 늘리는 것도 이미 한계다. 비급여를 남발할 수도 없고, 그마저 있는 비급여도 보장성 강화라며 원가 이하의 수가만 보상받는다. 여기에 화재나 감염 등에 대비하라며 시설투자를 강제한다”며 “절벽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당장 카드수수료 관련 사항을 관장하는 금융위원회는 사태를 관망하며 은근히 카드사 편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달 19일에는 2차례나 브리핑에 나서면서도 일방적 통보에 의한 무늬만 협상인 현실에 대한 문제점 개선 등에 대해서는 일체 답변하지 않았다.
단지 “대형가맹점과 카드사 간의 협상진행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협상 완료 후 대형가맹점 등에 대한 카드수수료 적용실태를 점검하고, 위법사항이 확인되는 경우 법에 따라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그마저도 “금융당국이 협상과정에 직접 개입하긴 어렵다”면서 모니터링 및 실태점검 또한 카드사의 협조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전제했다.
카드사가 개별 가맹점의 카드수수료를 정하는 근간인 적격비용의 산출근거를 일일이 살필 수 없을뿐더러 카드사가 영업상의 비밀이라는 이유로 협조를 하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타 영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한다”며 병원계가 요구하는 의료의 공공성을 감안한 우대수수료율 적용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해 문제해결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또한 카드수수료와 관련해서는 금융위원회 소관이라며 의료계의 의견을 담은 협조공문을 두어번 보냈을 뿐 소극적인 대응 만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A원장이 지적한 건강보험제도와 카드수수료 책정 사이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원가 이상의 적정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행태에 대해 병원계 관계자 C씨는 “정부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는 듯하다”면서 “분명 저수가 등 의료계의 해묵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풀기가 쉽진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수동적이고 근시안적으로 땜빵하듯 한다면 언젠가 의료가 붕괴되고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