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궈진 여론 속, 낙태 어디까지 허용해야할까

달궈진 여론 속, 낙태 어디까지 허용해야할까

기사승인 2019-04-04 00:00:00

오는 4월 11일, 낙태죄의 위헌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이에 사회가 낙태 허용여부를 두고 다시금 시끄러워지고 있다. 종교계, 시민사회, 의료계 할 것 없이 각계가 각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과연 낙태죄는 위헌일까? 만약 허용된다면 어디까지 인정해야할까.

현재 제기되는 낙태죄 논란의 쟁점은 크게 3가지다. 낙태가 가능한 기간과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해야하는 사유에 태아의 신체적 문제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원인을 포함시켜야하는지 여부다. 이를 두고 찬성과 반대, 중립 각각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낙태는 1953년 정해진 형법 269조와 270조에 의해 범죄다. 다만, 모자보건법 14조에 따라 의사는 부모의 동의를 받아 임신 24주 이내인 경우에 한해 부모 중 1명이라도 대통령령으로 정한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혹은 전염성 질환이 있을 때 낙태를 할 수 있다.

여기에 여성이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한 때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한 때 ▲임신을 지속할 경우 보건의학적 이유로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을 때에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했다.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이다. 전염성 질환은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및 그 밖에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병으로 제한된다.

이에 따라 낙태죄 위헌논쟁에 불을 지핀 산부인과 의사 A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69회의 낙태시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재판 중인 A는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시 A의 법률대리인은 “임신·출산은 여성의 인생에 여러 번 일어나는 일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여성이 임신과 출산 여부나 그 시기 등을 결정할 자유를 제한해 여성의 자기운명결정권을 침해하고, 임신 초기에 안전한 중절수술을 받지 못하게 제한해 임부의 건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 “사회가 책임지지 못한다면 산모라도 결정할 수 있게 해야”

그리고 이 같은 주장은 낙태를 허용하자는 이들의 핵심논리다. 지난달 30일, 광화문 광장 앞에 모인 1500여명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전면 비범죄화’, ‘유산유도제 도입을 통한 여성건강권 보장’,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여성의 삶 억업하는 낙태죄 폐지’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위헌판결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국가가 인구정책의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징벌하며 건강과 삶을 위협해왔고, 아이를 낳을 사회적 환경은 마련하지 않은 채 개인의 삶에 대한 결정조차 사회의 사회구조적 조건에 귀속시켜 자유를 억압해왔다며 낙태죄 폐지를 시작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보장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모자보건법은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으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기 위해 국가가 만든 법으로 임신중지사유를 허락받고 증명해야하는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고 비난하며,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 아래 사회구성원 모두가 아이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 모두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인권존중사회로 나아가야할 것이라고도 일을 모았다.

집회에 참여한 권혜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사서분과장은 “불안정한 노동과 성차별적 인식과 환경 속에서 여성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손가락질과 차별에 고통받고 있다”며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다. 내 몸에 대한 결정은 내가 한다. 나 외에 아무도 나를 통제할 권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혼여부를 떠나 여성이 아이를 낳아 아무런 편견이나 차별 없이 기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 한,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보장해야하며, 이를 이유로 죄를 묻고 처벌을 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횡포이자 억압이라는 말이다. 나아가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해야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 “태아도 생명, 낙태허용은 생명유기, 나중엔 고려장도 부활시킬테냐”

이 같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기초한 낙태전면허용 목소리에 맞서 생명존중을 외치며 낙태는 결코 허용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는 이들도 있다. 지난달 낙태죄 폐지집회에 앞선 25일 국회에서는 ‘낙태죄 대안마련, 무엇이 쟁점인가’란 주제로 낙태 허용에 반대하는 이들의 토론회가 열렸다. 그리고 낙태가 여성인권과 사회질서를 오히려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 저출산과 급격한 고령인구 증가가 맞물려 청년층이 부양해야할 이들이 우려스러운 수준까지 올라갈 경우 청년의 행복추구권을 근거로 노인을 산기슭에 버리는 ‘고려장’ 풍습이 부활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 지금 여성의 자기결정권 주장과 태아의 생명권이 충돌하는 상황과 다를 것이 없는 만큼 지금의 대립구도는 잘못됐다고 이들은 말한다. 

함수연 낙태반대운동연합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지금 사회는 낙태문제를)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대립이라는 틀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잘못됐다.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은 가치 기준이 다르다 둘 모두 독립된 영역에서 같이 보호돼야할 권리”라며 낙태를 조장하기보다 그 배경에 자리한 잘못된 사회·환경적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허울 뒤에 낙태를 허용함으로써 미혼모나 장애아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 사회·경제적 지원의 부족으로 인한 양육의 어려움과 저출산, 여성의 경력단절을 유도하는 듯한 사회분위기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낙태허용이라는 살인행위를 통해 손쉽게 해결하려는 의도가 감춰져있다는 지적이다.

김혜윤 건강과가정을위한학부모연합대표는 과거 이직을 준비하며 계획하지 않은 임신으로 곤란했던 상황과 뒤이은 유산의 경험을 고백하며 “아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떠났다는 죄책감이 지금도 떠나질 않는다. 자기 결정이지만 아이를 떠나보낼 때 받을 산모의 심리적 고통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면서 낙태가 여성과 태아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현실을 전했다.

이와 관련 함 회장은 “낙태를 허용하면 여성을 진정한 사회적 약자로 만든다. 출산과 양육을 원하는 여성의 권리가 남성의 낙태요구에 위협받고, 남성이 양육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심지어 남성의 피임조차 적극적이지 않게 될 것”이라며 “책임을 배울 수 있는 올바른 성교육과 사회인식, 모자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 전문가들, 낙태죄 존속·허용범위 확대 ‘전망’… 정부도 준비 중?

이처럼 낙태의 전면허용과 결사반대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어떤 판결을 내리고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법학전문가나 정부기관들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판결에서 합헌이라는 기존판단을 존중하면서도 낙태의 허용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관대한 입장이 취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국가권익위원회는 낙태죄 위헌심판에 의견을 밝히지 않았던 기존 입장을 바꿔 최근 “출산은 여성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인데도 낙태죄는 경제·사회적 사안에 관해 공권력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며 여성의 결정권, 건강권, 생명권, 재생산권 등을 이유로 ‘위헌’의견을 전달했다.

여기에 유관기관인 여성가족부는 낙태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법무부는 원칙적으로 낙태죄는 합헌이지만 예외를 인정하는 모자보건법 상 낙태허용범위는 늘리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는 취지를 헌법재판소에 피력했다.

정현미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낙태의 자유는 예외적인 허용한계를 통해 결정되므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위헌이라 볼 수 없다. 다만, 낙태의 예외적 허용한계를 규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허용범위가 지나치게 좁아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거나 임신초기에는 허용하는 등의 범위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판과정에서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낙태죄의 위헌판결이 내려지진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과거와 달리 사회적 여론과 권익위 등 유관기관의 입장이 낙태의 허용범위 확대에 긍정적인만큼 헌법재판소도 이를 감안한 판결을 내리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관측했다.

낙태를 허용하는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정 교수가 언급했듯 사회·경제적 사유를 통해 육아가 어려운 가정이나 미혼모 출산 등이 일부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낙태죄 합헌을 주장하는 이들은 허용범위가 확대돼도 사회·경제적 사유는 절대 포함돼서는 안 된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사회가 책임져야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기타 생물·유전학적 혹은 의학적, 심리학적 사유에 관해서는 산부인과의사회 등 의료계의 주장이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의료계는 낙태가 가능한 시기를 기존 24주 이내에서 12주 정도로 줄이는 대신 무뇌아 등 출생 후 생존이 힘든 심각한 질병이나 선천성 기형 등 태아원인에 기원한 인공임신중절수술은 허용돼야한다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도 이들의 의견을 토대로 OECD 회원국들의 낙태허용 기준 등을 검토해 쟁점 사안들의 허용가능범위를 타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검토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낙태허용기간을 12주 이내로 두고, 무뇌아 등 출산 직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선천적 질환을 가진 경우, 성폭행 등에 의한 임신 등의 규정을 구체화하는 등 제한적으로 허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다만 낙태 결정이 이뤄지기 전 일정 시일을 두고 상담 및 전문가 검토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낙태상담기관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는 기관을 달리하도록 하는 방안 등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들이 무분별한 낙태와 사회적의 부정적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안전장치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약물적 유산유도제 도입이나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 등에 대한 검토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도입 및 전환 여부는 불투명해보인다. 복지부는 단지 검토만 이뤄지고 있을 뿐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못 박으며 일단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로도 낙태 허용범위를 두고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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